<고의서산책/ 1052> - 『壁墻神方』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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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52> - 『壁墻神方』①
  • 승인 2023.04.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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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담장 안에서 생사의 이치를 깨치다

  이 생경한 이름의 책, 『壁墻神方』은 아직 지은이를 특정해서 밝히기 어려운 초사본 의서이다. 서명 역시 오랜 손길에 닳아 뭉개져 흔적만 희미한 채, 분명하게 판독되지 않으나 소개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표지에 남아있는 필흔에 의거하여 필자가 임시서명을 부여하였다. 이 점 미리 독자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 『벽장신방』

  하지만 담겨진 내용은 여느 통속본 의서에 비할 바 아니어서 굳이 한자리를 빌어 개략적인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작성 시기는 대략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내외로 보인다. 저작과 관련한 명호가 분명하게 적혀 있는 것은 아니나 첫머리에 작성자 혹은 소장자 아호로 보이는 ‘隱栢’이라 새겨진 소인이 다수 발견된다.

  서문이나 목차 없이 곧장 약성가로부터 본문이 시작하는데, 4언4귀로 된 약성시는 대체로 『만병회춘』이나 『수세보원』에 수록된 것을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총 232수가 실려 있다. 수록약종이나 기재사항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다. 또 당재와 향약의 구분이나 향약명이 기재되지 않은 점과 기재내용이 크게 달라 『제중신편』약성가 간행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어 藥句䪨(박)이란 조목이 있는데, 각종 약물의 용법과 주치효능을 시귀로 만들어 제시해 놓은 것이다. 예컨대, 寒藥에 “諸藥識性, 此類最寒”이란 구절로 시작하는데, “犀角解心熱兮, 羚羊淸肺心肝.”이라하여 서각과 영양각이 가장 한성이 강하며 심열을 풀어주고 간과 심폐를 맑혀준다고 하였다. 이하 2조씩 대귀를 이루어 구성하였는데, 상산과 정력까지 66종 약물의 용법을 기재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寒, 熱, 溫, 平 4가지 약성에 따라 구분해 각각 필발, 생강으로부터 침향, 귤피에 이르기까지 열성약 60종, 목향, 반하로부터 토사자, 馬藺花까지 온성약 54종, 망사, 용치로부터 오매, 죽력까지 平和之藥 68종에 대한 약성주치를 기술했다.

  약성가 다음으로는 장부보사용약문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태세운기별로 태과불급에 따른 주치처방의 용약법을 제시해 놓은 것이다. 예컨대 갑년에는 토기가 과도하여 수기를 제어하게 되는데, 신년에는 수기가 불급하여 토기의 제어를 받게 된다. 이에 갑년에는 부자수유탕, 신년에는 오미자탕을 주치방으로 배정해야 한다.

  이때 비장의 토기가 과한 경우, 사황산, 조위승기탕, 보황련복령탕, 대승기탕, 소승기탕, 곽향정기산, 불환금정기산, 정전가미이진탕 등을 선별해 사용할 수 있다. 또 신기가 허핍한 경우, 육미환, 보신환, 자음강화탕, 보가미보신환, 청리자감탕을 골라서 쓰게 된다. 또 음허생내열한 경우, 고암심신환, 후감리환, 청상보하환, 황련복령탕, 시청사간탕, 청심연자음 등 처방을 선택할 수 있다.

  이어 延壽賦가 실려 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후세 의자가 다만 각 장부경락이 지닌 한 가지 속성만 알고 각기 오행의 이치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치법을 정해 병을 다스리는 방도가 마치 膠柱鼓瑟과 같을 뿐이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라고 한탄하면서 후학들로 하여금 이점에 각별히 유의하여 상세히 궁구한다면 명료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특별히 마지막 구절에서는 대법이라는 제목으로 운기방을 처방하는 방법을 요약해서 밝혀놓았다. 요령은 곧, 태세의 운으로 군약을 삼고 月建의 운에 따라 신약으로 삼으며, 일진으로 使藥, 建時로 配伍약을 정한다고 하였다. 여타 각 장부경락의 주치약, 補母瀉子하는 약 및 상생상부하는 약으로써 병에 적당한 약을 골라 쓴다면 운기의 이치를 융회관통하여 손바닥을 뒤집듯이 손쉽게 죽을 목숨을 건져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놓았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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