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서지 번역,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에 시작한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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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서지 번역,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에 시작한 작업”
  • 승인 2023.04.13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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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기자

김춘호 기자

mjmedi@mjmedi.com


▶인터뷰: 조선의서지 번역한 오준호 한의학연 박사.

“학계에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책은 어떤 사안에 대해 최초로 논점 제시한 책”

최근 미키 사카에의 조선의서지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의사학의 기초적인 자료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고 평을 받고 있다. 무려 1300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을 번역한 오준호 박사(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선의서지>를 번역 출간했다. 어떤 책인지 소개해달라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동의보감> 등 한국의 의서를 대상으로 서적의 판본, 내용, 인용서, 저자, 의학적 의의 등을 고찰한 연구서이다. 의서뿐만 아니라 의학과 관련된 주변 서적들도 실려있고, 한국과 관련되어있는 중국과 일본의 서적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인 미키 사카에(三木 榮)라는 일본인 학자는 어떤 사람인가. 
한국 의학사를 개척한 1세대 학자로서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에 건너와 조선 의학사를 연구했다. 그는 연표에 해당하는 <조선의사연표朝鮮醫事年表>, 의학 관련 서적을 고찰한 <조선의서지朝鮮醫書誌>를 저술했고, 이들을 바탕으로 의학사 전체를 조망한 <조선의학사 및 질병사朝鮮醫學史及疾病史>를 집필했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학계에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책은 어떤 사안에 대해 최초로 논점을 제시한 책이다. 최초로 제기된 논점은 논의의 출발점이자 극복의 대상이다. 따라서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이를 인용할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넘어서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다. 한국 의서에 관해서 ‘조선의서지’는 그러한 책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계가 그 내용을 얼마나 소화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늦었지만 먼저 잘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으며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아주 오래 걸렸다. 개인적으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에 공부 삼아 시작한 작업이었다. 집중해서 한 시기도 있지만 바쁜 일이 있으면 한동안 손 놓고 있기도 했다. 책을 내기로 하고 초역 원고를 보충하고 다듬고 정리하는 데만 2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단순히 번역서를 내고자 했다면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작자가 언급한 사료를 하나하나 찾고 확인하면서 진행했기 때문에 많은 시일이 소요됐다. 또 원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서문(序文)이나 발문(跋文) 등 1차 사료인데, 원서에는 일본어 번역 없이 한문 그대로 실어 놓았다. 또 그중 대부분은 일부만 인용해 놓았다. 이번 작업에서는 원서에서 생략된 내용을 채워 넣고 한문 사료를 모두 번역했다. 이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 주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마무리되지 못했을 것이다. 

▶독자들이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읽었으면 하나.
아마 이 인터뷰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분이라면 <조선의서지>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이분들에게는 이 책을 읽어보시라 권해드리기 어렵다. 그러나 ‘불필요의 필요’라는 역설이 있다. 꽃이나 보석은 불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가질 만큼 정신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 필요하다. 이 책은 한 번 사볼까 하는 마음으로 살만큼 싸지 않다. 또 매우 두꺼운 데다 디자인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책꽂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불필요하므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한 권 구매하시기를 바란다. 한의학 기초 학문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즐거움은 덤이다. 

한편, ‘조선의서지’라는 책과 ‘미키 사카에’라는 사람을 이미 아는 분들은 인터뷰 글 제목을 보고 “아, 이 책이 번역되었구나.”할 뿐 역자의 인터뷰는 읽지 않을 것이다. 이분들께는 꼭 필요한 책이다. 조선의서지를 원서로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번역서를 보시면 귀중한 시간이 크게 절약되기 때문이다. 이미 종이로 된 책을 사셨다면 eBook도 발간되어 있으니 익숙한 플랫폼에서 추가로 구매해 주시기를 바란다. eBook은 검색할 수 있고 휴대하기도 좋으므로 종이책과 다른 쓰임이 있다. 이 책을 활용하다가 오류나 부족한 점이 보이거든 교학상장의 마음으로 책 끝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알려주시면 좋겠다. 보내주는 의견을 모아 온라인 페이지를 통해 정정 사항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향후 번역 준비 중이거나 집필 예정인 책이 있는가. 
몇 가지 생각하고는 있으나 1,300페이지가 넘는 학술서가 출판사에 재고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다른 책에 대한 말을 꺼내기 어려울 것 같다. 출판사에 큰 손실을 안겨준 이의 책을 누가 다시 출판하려 하겠는가. 천운이 따라 손익 분기를 넘긴 다음에야 출판사 사장님과 다음 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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