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홍균의 도서비평]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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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홍균의 도서비평]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
  • 승인 2023.04.1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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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균

김홍균

naiching@naver.com

대구한의과대학에서 학부과정을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내경한의원장과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및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있으며, 의사학전공으로 논문은 '의림촬요의 의사학적 연구' 외에 다수가 있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도서비평┃이끼와 함께

아주 가끔 기독교 경전인 성경의 창세기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천지창조의 모든 것을 담아 경이로운 신의 경지를 느끼게 해준다. 창조주의 직접적인 최초의 말씀은 “빛이 있으라”였다. 흑암에서 한 줄기 빛을 내어 밝은 세상을 만들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온갖 것을 만들고 마지막에 흙으로 창조주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빚고 창조주의 입김으로 생명을 불어 넣어 낙원에서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였다. 결국 천지창조의 목적은 인간의 삶을 온전하게 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은 인류가 살아가기 위한 바탕이 된다고 여기는 것이 자연과학의 출발점이 된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충실한 역할을 해왔다. 오늘 소개하는 ‘이끼’도 그들 과학이 접근하는 것 중의 하나다.

로빈 월 키머리 지음, 하인해 옮김, 눌와 펴냄

최초의 식물은 관다발이 형성된 4억 2천 500만 년 전의 고생대 실룰리아기에 존재했던 쿡소니아(Cooksonia)로 알려져 있지만, 아마도 이끼는 그 이전부터 육상에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대략 4억 5천만 년 전이다. 이끼는 물속의 녹조류가 뭍으로 상륙하여 지구 최초의 녹색 개척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관다발을 만들어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이 되고, 튼튼한 목질부를 만들어 겉씨식물이 되고, 더욱 안전하게 종자를 보호하고자 속씨식물로 나아가게 되는 식물 진화의 원조다. 게다가 이끼는 약간의 뿌리처럼 생긴 것이 있지만, 그것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존재할 뿐 전혀 물을 흡수하는 기관이 아니다. 온몸을 사용하여 엄청난 양의 수분을 흡수하고 저장해서 말라 있을 때에 비해 20배에 달하는 정도다.

이 같은 이끼는 많은 미생물과 곤충의 영양을 공급하기도 하고, 딱딱한 바위에 붙어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역할도 한다. 풍부한 수분의 함유량으로 다른 식물의 수분공급에도 연관이 깊으면서, 많은 산소를 내뿜기 때문에 인류가 만드는 각종 매연물질도 정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웬만한 정화식물의 거의 1,000배나 된다. 높은 흡수력으로 근대 이전에는 생리대나 지혈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책의 저자인 키머리는 그녀의 어릴 적에 마주한 이끼와의 추억을 가지고 대학에서 이끼를 전공하여, 강의와 더불어 이 책의 서술도 잔잔한 그녀의 성격과 같이 각종 이끼의 얘기를 차분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세밀화로 아름답게 그려진 각종 이끼의 그림이 그녀의 또 다른 면모를 느끼게 한다.

과학은 이제까지 인간의 삶을 자연에서 분리해왔다. 저자 키머리는 자연과 절대적 존재로 인류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이끼에 대해 명쾌한 설명과 더불어 어떻게 이끼와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혜를 언급하고 있다. 자연과의 분리가 아니라 자연과의 공존을 강조한다. 들과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세상의 모든 식물이 솔이끼와 우산이끼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식용으로 뿐만 아니라 한약재 또는 인삼의 포장재로 이용했던 조상의 슬기 또한 오늘날 가볍게 여겼던 우리의 생각에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공부되었던 본초학(本草學)에 대한 이해를 약재의 기원을 생각하며, 어떤 이끼가 어떤 환경에서 진화된 식물인지를 좀 더 알아본다면, 그 이해도가 훨씬 높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김홍균 金洪均 / 서울시 광진구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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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한의과대학에서 학부과정을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내경한의원장과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및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있으며, 의사학전공으로 논문은 '의림촬요의 의사학적 연구' 외에 다수가 있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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