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동의신정(13) 배우자가 변하지 않아도 화병이 치료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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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동의신정(13) 배우자가 변하지 않아도 화병이 치료되나요?
  • 승인 2023.04.14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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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찬영

권찬영

mjmedi@mjmedi.com


권찬영
동의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조교수

어느날 배우자가 외도하는 것을 목격한 중년 여성 환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외도한 배우자는 적반하장으로 뻔뻔히 나오는 상황이다. 한 평생 남편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희생해왔다고 생각한 환자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이런 배신 뿐이라는 생각에 억울함, 분함을 느끼며 가슴답답함, 상열감, 불면, 두통 등 증상을 경험하는 화병이 발생했다.

마음의 상처도 힘든데, 몸도 아프고, 매일 집에서 마주하는 배우자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 치료를 받기 위해 한방신경정신과 클리닉에 내원했다. 이런 환자가 내원했을 때 필자가 그 환자에게도, 그리고 이런 케이스를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하는 질문이 있다.

“배우자가 변하지 않아도 화병은 나을 수 있을까?”

환자분들의 경우,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다면 (즉,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화병이 나을 수 없다고 답하고, 의외로 학생들 역시 절반 이상이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다면 화병은 낫지 않을 것 같다고 답한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경우에도 (즉,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화병은 나을 수 있다고 본다. 환자 개인의 자생력이 존재하며, 이 자생력을 이용하여 스트레스 사건을 환자가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며,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과 불행을 선택해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보는 질병 발생과 치유과정은 크게 정기(正氣)와 사기(邪氣) 간의 대립으로 개념화된다. 우리는 부정거사(扶正祛邪: 정기를 강하게 하여 사기가 물러가게 함)라는 치료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정신장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환자가 처한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도 환자의 정기(正氣)를 튼튼하게 함으로써 화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목적을 갖는 대표적인 한방정신요법으로 ‘M&L 치료’가 있다.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2022년 33권 4호에 발표된 증례보고에서는 배우자 외도로 인한 화병 환자에 대하여 M&L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적용한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

조주연, 김상범, 김다담, 강형원. 배우자 외도로 인한 60대 화병 환자의 M&L 심리치료 프로그램 적용 치험례.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2022;33(4):463-471.

 

이 증례보고의 대상자는 60대 여환으로, 배우자의 외도 사건 후 화병 증상 발생하여 한방신경정신과에 입원한 환자이다. 이 환자에게는 주소증인 흉부 불편감과 호흡 불편감을 치료할 목적으로 지실치자시탕, 지실해백계지탕, 지실해백계지탕합치자시탕 등의 한약치료 및 침치료와 함께, M&L 심리치료가 시행되었다.

입원기간 중 심리치료의 적용을 위하여 기본적인 정신과적 개인력 조사를 먼저 시행하고, M&L 심리치료 중 마음의 방 그리기, 리소스 마인드풀니스, 하단전 명상, 주얼박스 테라피, 스토리텔링 명상, 신체감각 마인드풀니스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다. 그 중, 리소스 마인드풀니스의 시행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외의 치료방법은 논문에 기재되어 있으므로 참고)

“입원 8일차 이정변기요법 및 리소스 마인드풀니스(Resource Mindfulness)를 시행하였다. 상환 10년가량 신앙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이웃들과 함께 여행을 했던 추억을 리소스로 설정하였다. 상담 중 비춰지는 감사함, 행복감을 컨택하며, 해당 경험이 환자 스스로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리소스인 여행지에서의 편안하고 따뜻한 감정을 신체 부위에 저장하는 작업을 하였다. 명상 이후, 좋았던 기억을 재경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 감사함 표현하여 앞으로도 내적 리소스를 키우고 힘든 상황을 환기하고 대처할수 있는 힘을 기르자고 지지하였다.” (467p)

즉, M&L 치료와 같은 한방정신요법은 치료 목적 자체가 환자 개인의 자생력, 정기, 또는 내적 리소스를 키움으로써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중요한 치료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치료에는 한의학의 부정거사(扶正祛邪) 원리를 정신장애 치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전제와 함께, 개인의 내적인 힘을 키움으로써 환자 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또 그렇게 믿는 인본주의적인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임상에서 상담을 하다보면 환자가 처한 상황이 참으로 어렵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막막한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환자와 마찬가지로 그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환자의 내적인 힘을 키우는 것에 집중한다면, “어찌할 수 없는 일 말고, 무언가 해볼 수 있는 일에 힘을 쏟도록” 돕는다면, 환자가 자신과 자신 주위의 환경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환자는 비로소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소중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유사한 사례로 환자의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상의라면 위 소개한 증례보고를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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