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28) 신카이 마코토가 전하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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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28) 신카이 마코토가 전하는 위로
  • 승인 2023.04.2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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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아들이 어느 날 문득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무슨 영화를 보고 싶냐고 물으니 <스즈메의 문단속>이란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벌써 신카이 마코토(しんかいまこと:新海誠) 감독의 영화를 재밌게 볼 나이인가 싶어 살짝 놀라기도 했지만, 덕분에 일요일 아침부터 온가족이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개인적 감상으로는 전편들 보다 감동이 없어서 시큰둥했지만 아들의 반응은 달랐다. “아빠, 이 영화 내 용돈으로 다시 보러 오고 싶어. 정말 좋았어!” 라는 말을 듣고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과거에 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보고 참 좋았었다. 그 시절 나는 어떤 부분에서 감동을 느꼈을까? 기억 저편에 잊혀져있을 그의 작품들과 명대사, 그리고 음악이 궁금해졌다.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내가 봤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쭉 둘러보며 그 시간에 잠시 머물러보니 과거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영화를 한 편씩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작품을 두루 관통하는 세 가지 메시지, 어려운 현실에 처한 주인공과 신(神)에 대한 믿음 그리고 희망에 대한 확신이다.

 

“그 후 열차는 두 시간이나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서 있었다. 1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고, 시간은 명백한 악의를 품고 내 위를 천천히 흘러갔다. 나는 이를 꽉 물고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초속 5센티미터>에 나오는 대사다. 그중에서도 특히 ‘명백히 악의를 품은 시간’이라는 대사는 다시 볼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 느껴지는 1분 1초의 무게감을 이보다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우리 앞에는 너무나 거대한 인생이, 아득한 인생이 감당할 수 없게 가로놓여 있었다.” “그냥 일상생활만 해도 슬픔은 여기저기에 쌓인다.” <초속 5센티미터> 속 이 대사들은 행복해보이고 별 문제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는 우리와 주변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런 아득함과 슬픔이 공존하고 있다는 말을 해주고 있었다. 마치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그래. 우리 모두 때때로 현실이 슬프고 미래가 걱정돼.’라며 토닥여주는 듯 했다. 감독은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어려운 현실에 처한 우리의 마음을 공감하고,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을 아름다운 대사로 눈앞에 가져다주었다. 표현할 만한 정확한 단어가 없어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마음이 주인공의 목소리로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순간 우리는 큰 위로를 받는다.

그의 영화에서 발견한 또 다른 특징은 신(神)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다.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대사가 없는 주인공으로 느껴질 만큼 신의 존재가 부각되었지만 <너의 이름은>에서도 신에 대한 묘사가 영화 곳곳에 나온다. “실로 이어지는 것도 무스비(むすび), 사람과 이어지는 것도 무스비, 흘러가는 것도 무스비, 다 같은 말을 쓰지. 그것은 신을 부르는 이름이고, 신의 힘이야. 우리들을 만든 꼬아진 끈도, 신의 재주,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단다.” 주인공 미츠하의 할머니가 손녀에게 전하는 이 따뜻한 대사를 통해서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모든 우연 속에 담긴 신의 뜻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재난은 자연에 비해 한없이 작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신의 뜻이라는 것을.

하지만 <날씨의 아이>에서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배하지만 그와 더불어 인간의 의지와 희망도 얘기하고 있다. “혹시 하느님이 계시다면 부탁입니다. 하느님. 이미 충분해요. 이미 괜찮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이상 우리에게 무엇도 주지 마시고, 무엇도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신님 우리들을 쭉 이대로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모든 작품에 걸쳐 감독이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일수도 있는 주인공의 짧은 대사로 마무리 된다. “우리들은 분명.... 괜찮을 거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재난을 경험한 모든 사람을 위해 <스즈메의 문단속>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진이나 해일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자연 재해 뿐 아니라 모든 상실과 슬픔 그리고 고통 역시 재난이다. 자연 그리고 삶 속의 모든 재난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위로의 대상이다. 스스로 괜찮다고, 어른이니까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야 쓰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사랑하는 것 아닐까.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지금의 스즈메는 일기장과 함께 묻어둔 과거의 스즈메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있잖아 스즈메, 너는 앞으로 누군가를 아주 좋아하게 되고 너를 아주 좋아하는 누군가와 많이 만날 거야. 지금은 캄캄하기만 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꼭 아침이 와. 아침이 오고 또 밤이 오고 그것을 수 없이 반복하며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 거야. 틀림없이 그렇게 돼. 그러도록 정해져 있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누구도 스즈메를 방해할 수 없어.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 거야.” 피할 수 없는 재난은 신의 뜻이지만, 우리는 결국 괜찮을 거라는 그의 메시지가 영화 속 빛과 하늘,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스며든다.

“괜찮아. 우린 분명 괜찮을 거라고.”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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