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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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 승인 2023.05.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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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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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암은성한의원 원장이자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암한방의료봉사단 위원장이며, 서울 중랑구한의사회 수석부회장이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도서비평┃일본은 왜 한국 역사에 집착하는가?

30여 년 전, 시골에 살다가 서울로 전학을 와서 큰 충격을 받았었다. 친구들이 일본을 너무 좋아했다. 일제 펜텔 샤프를 쓰면서 일본 스타일 옷을 입고 슬램덩크 만화와 엑스재팬 같은 그룹을 좋아했다. 일본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 유행이었다. 친했던 짝은 한술 더 떠서 일본을 너무 사랑해서 일본에 살고 싶다고 밥 먹듯이 이야기하고 다녔다. 첫 해외여행도 일본이었다. 대학생 교류 차원에서 방문한 일본 대학은 신세계였다. 카드 키를 꼭 찍어야 열리는 자동문, 담배꽁초 하나 없는 깨끗한 학교, 곳곳에 설치된 흡연실……. 미래의 도시였다.

홍성화 지음, 시여비 펴냄

결혼하고 나서는 태교 여행으로 일본 도쿄에 갔다. 물가는 비쌌지만, 좋은 환경을 보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여행지였다. 대학원생 시절에는 일본에서 사암침법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여러 번 방문도 했다. 주로 한의학 관련 중고 책을 구매했다. 새 책처럼 깨끗하게 관리한 중고 책에서 일본인의 습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일본 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사고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인한 일본 거부 운동으로 일본을 여행지에서 지웠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본은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고, 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이웃 나라다.

일본을 돌아다니면서 한국과 일본 교류의 역사를 연구한 홍성화 교수는 최근 『일본은 왜 한국 역사에 집착하는가?』에서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국보인 칠지도에 새겨진 글자를 재해석하여 백제가 헌납한 칼이 아니라 백제가 일본의 왕에게 칠지도를 하사한 것으로 보았다. 일본 오사카의 전방후원(前方後圓) 다이센 고분과 비슷한 형태로 한반도의 남쪽 지방에서 발견된 전방후원 무덤을 일본의 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로 보았지만, 저자는 백제와 일본의 교류 역사의 증거로 보고 있다, 오히려 고분의 안쪽에는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이 형태가 나타나는 것으로 백제의 문화가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왜인(渡倭人), 백제의 선진문화와 유학을 일본에 전수한 왕인박사, 일본 곳곳에 있는 신라 장보고의 흔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일본으로 강제적으로 끌려간 피로인(被擄人)이 건설한 건축물, 조선통신사의 길, 부산에 있었던 왜관 등등 역사적 교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한국과 일본의 유적과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와 함께 일본 유적을 여행하는 느낌을 받는다. 책의 뒷부분에는 저자가 답사한 일본 지역의 지도를 실어서 찾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일본과 한국 교류의 역사는 한의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고대 의학 서적인 『의심방』에는 『신라법사방』, 『백제신집방』 등이 인용되어 있어 의학적 교류가 오래전부터 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의병장으로 활동한 김덕방이 일본에 건너가서 한의학을 전하고 학파를 이루어 후인들이 『침구극비전』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조선의 의서 『의방유취』도 있다. 훗날 일본에서 『의방유취』 필사본 한 질을 조선에 선물하기도 하였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는 함께 간 조선의 의관이 일본의 의관들과 필담으로 한의학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사암침법을 일본에서 가져가서 일본 전통 침구 유파에서 ‘경락치료’의 본치법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팔맥교회혈을 이용한 조선의 침법을 다룬 『장진요편』을 일제강점기 가져가서 출판하였다. 일본인 택전건(澤田建)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접골원을 하면서 익힌 침구학을 일본에 가져가 전파하여 ‘태극요법’이라 명명하고 전수하였다. 그의 제자 중 나가노 결이라는 침구사는 ‘나가노 침법’을 만들었다. 일본의 한의학도 조선에 영향을 끼쳤다. 조선 시대에는 일본에서 『신응경』과 함께 옹저의 치료법이 조선에 전해져왔다는 것을 의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시각장애인 침구사들이 쓰는 호침이 조선에 들어와서 유행했었다.

한국과 가까워서 문화나 학문적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던 일본은 언제부터 한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일본과 관계가 좋아질까? 저자는 조선 초부터 일본인이 조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조선 중기 이미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임나일본부설이 퍼지어 있었으며, 조선통신사는 일본 정권에서 이용한 홍보수단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았다. 일본인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임나일본부설을 기반으로 하는 정한론(征韓論)의 영향으로 조선 병합을 시도하였다. 저자는 돈독한 한일관계를 위하여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오해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학 학회 차원의 작은 교류부터 시작하여 서로가 역사를 바르게 인식할 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진정한 이웃이 될 것이다.

 

정유옹 / 사암침법학회,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정유옹
서울 사암은성한의원 원장이자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암한방의료봉사단 위원장이며, 서울 중랑구한의사회 수석부회장이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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