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12) 고사리,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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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인류학하기](12) 고사리, 너무 비싸다?
  • 승인 2023.05.19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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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부산에 가족들과 놀러갔다가 호텔 한식당에서 비싼 육개장을 사먹었는데 정말이지 깜짝 놀랬다. 육개장에 들어있는 고사리가 너무 뻣뻣하고 질긴 것이, 난생 처음 경험하는 충격적인 맛이었기 때문이다. 늘 먹어왔던 지리산 고사리는 통통하고 연한데, 나물로 먹어도 맛있고 고기랑 같이 구워 먹어도 맛있어서 아이들도 곧잘 먹는다. 그래서 우리 가족뿐 아니라 남들 입에도 좋은지 제법 유명한 편이고 값도 잘 쳐준다. 마을 할머니들 말로는, 말린 고사리 한 근(600g)에 8만 원이 올해 시세라고 했다. 평소에 먹던 고사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나가는 것이었는지를 깨달은 참에 친정어머니가 합법적으로 고사리를 끊을 수 있는 야산을 알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귀찮다고 손사래를 쳤을 테지만 영원히 잊히지 않을 그 호텔 육개장의 고사리 덕분에 올봄에는 온 가족이 산에 야생고사리를 끊으러 나섰다.

◇우리 가족이 채취한 고사리 200g. 양은 적지만 재밌었다.

아예 재배를 하는 고사리밭이 아니라면 야산에서 고사리를 찾는 작업은 숨은그림찾기와 흡사하다. 얼핏 봐서는 그냥 잡초가 우거진 들판 같은 공간을 이모로도 저모로도 살펴보면서 구석구석 올라온 고사리 줄기가 있는지 눈으로 스캔한다. 부드럽고 통통한 그 줄기 아래를 손가락으로 또깍 분지르면 되는데, 줄기를 끊는 바로 그때의 손맛이 중독적이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야산의 잡초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숨은 고사리를 찾는 재미는 마치 한 이십년 전 고등학교 교실에서 친구들과 매직아이를 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다, 부드러운 고사리 줄기가 톡 부러질 때 손가락 마디에 남는 그 감각까지 더해지면 이건 종합예술에 가까운 무언가가 된다. 오죽하면 같이 나선 초등학생이 “내일 학교 안 가고 고사리 끊으러 오고 싶다!”고 외칠 정도랄까.

집에 와서 저울에 달아보니, 아이 포함 4명이 30분간 야산을 헤매며 끊어온 고사리가 고작 200g이었다. 너무 양이 적어 실망한 나머지, 1년 먹을 고사리를 장만하겠노라며 남편이 호기롭게 다시 나섰다. 하지만 비번인 날 가방까지 챙겨 반나절 동안 끊어 모은 고사리 역시 겨우 1kg 가량에 불과했다. 게다가 남편은 고사리를 끊던 중 바로 옆을 스쳐가는 뱀을 목격했고, 그 이후로는 그냥 사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 바로 산을 내려왔다고.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긁어모은 것만으로는 아직 제대로 된 나물이라 할 수 없다. 생고사리는 한번 삶고, 건져서, 말리는 공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시장에서 팔 수 있는 말린 고사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생고사리 무게의 1/15-1/20 정도로 중량손실이 발생하고, 우리 가족이 꺾어온 총 1.2kg 가량의 생고사리는 ‘겨우’ 6-70g 정도의 말린 고사리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올해 8만 원 시세를 쳐준다는 600g 한 근의 말린 고사리를 얻으려면 무려 약 10 kg 가량의 생고사리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익숙하지 않은 성인 남성 기준 3-4 시간에 1kg를 모았으니, 대략 3-40 시간을 소요해야 한 근의 말린 고사리를 얻는 것이다. 소고기보다 비싼 고사리라고들 하지만, 시간당 최저시급을 적용해봐도 이건 밑지는 장사나 다름없다. 심지어 삶고, 건지고, 말리는 공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동력은 포함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마을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늙은 삭신으로 야산 이곳저곳을 다니며 ‘무려 8만 원이나 되는’ 돈을 만들 수 있다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뱀이 나오든 말든 작은 나뭇가지들로 풀밭을 헤쳐가며 고사리를 끊어 모으는 데 여념들이 없는 것이다. 마침 고사리 철도 곧 끝나가니 더욱 마음이 조급하다. 고사리들이 특히 많이 모여 있는 반그늘 잡초밭에는 진드기도 잔뜩 있는데, 노인들은 뱀이나 진드기에 물릴 위험을 감수하고 한 근에 8만 원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고사리의 높이가 고작 1-20cm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안 그래도 고된 노동으로 꼬부라진 허리를 잔뜩 구푸린 채 퇴행성 관절염으로 삐걱거리는 무릎으로 야산을 헤매는 농촌 할매들의 모습이 훤히 그려지는 것 같다. 아마도 그렇게 한동안 일하고 나면 허리와 무릎이 많이 쑤실 테다. 그러니 국산 고사리의 가격은 절대 비싸지 않다. 한 근에 8 만 원이 왠지 비싼 것 같아 불평하고 싶어진다면(내가 그랬다), 온몸에 진드기 퇴치제를 뿌리고 언제든 뱀과 맞닥뜨릴 각오를 다진 후 나물 채취를 해도 되는 합법적인 야산–사유지 무단 채취는 불법이다–에 올라가 보자. 장담컨대, 말린 고사리 한 근을 절대 채우지 못할 것이다.

 

신유정 / 인류학 박사,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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