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약초 기행] 10. 자연에 대한 깨달음
상태바
[연변 약초 기행] 10. 자연에 대한 깨달음
  • 승인 2005.01.07 14: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李 惠 善
작가·연변작가협회 주임

백금령의 산들이 국화(註: 國畵=중국에서 서양화 또는 書畵에 대하여 筆墨으로 그린 전통적인 회화를 이르는 말)에 나오는 산수화처럼 기세 있게 솟아있다. 바위가 날카로워 강이 수려해 보이고 강이 수려해 산이 더 의젓해 보인다. 멀지 않은 곳에 강물과 강바람에 여러 가지 곡선을 만들며 휘어진 낮은 버드나무들이 분재같이 아름답게 서있고, 아담한 농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은 특별히 까치가 많은 곳이다. 까치가 우짖는 소리에 상쾌한 아침이 깨곤 한다. 지금도 귓가에 까치소리가 다정하다.

1990년 음력설을 이곳에서 쇤 적이 있다. 내가 소속해있는 작가협회 전업작가들이 이 곳에 생활체험을 내려와서 농민들과 함께 대보름까지 쇘었다. 그 때 이 곳 농민들은 찰떡을 치고 두부를 앗고(註: 앗다=두부나 묵을 만든다는 북한어) 술을 사서 북한에 보냈다. 나는 문우와 함께 미끄럼을 치며 북한쪽으로 다가갔다. 강으로 나온 북한 사람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광복이 날 때까지만 해도 조선족은 국경이 막힐 줄은 몰랐다. 언제든 고향에 간다는 마음으로 두만강 가에 터전을 잡고 살았다. 광복에 고향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대개 네 가지 부류, 부모 삼년제가 끝나지 않아 산소를 두고 떠날 수 없는 사람, 일본군에 강제로 징병된 자식이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는 사람, 여비가 없는 사람, 가도 발을 들여놓을 집 한 채, 땅 한치 없는 사람들이다. 두만강가에 있는 정암촌에는 고향에서 잊혀진지 오래된 ‘청주아리랑’ 망향의 노래를 부르며 60여년을 살아온 충북마을이 있다. 그렇게 강 하나를 사이 두고 어느 날 두 나라 국민이 되었다.

광복을 계기로 조선족은 3차례 대 이동을 겪는다.
첫 번째는 광복, 120만 명이 귀국하고 90만이 남아 현재 200만이 되었다.
두 번째는 ‘문화혁명’시기 민족동화정책의 탄압을 피해 수만 명이 고국으로 이동, 한국으로 가는 길은 막혀있고 주로 북한으로 이동했는데, 그 때 이 두만강에 밀항하는 사람들의 시체가 많이 떴다고 한다.
세 번째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실시에 힘입은 조선족의 한국 친척방문 및 노무종사, 유학이다. 현재 한국에 16만이 체류 중, 그중 상당한 사람은 불법체류자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조선족이 북한으로 식량과 옷, 돈을 지원하고 있고, 북한의 중국친척 방문 행열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는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한반도가 하나로 될 때가 있으리라.

한동안 굳었던 분위기는 신민교 교수(원광대)가 잠자리를 촬영하면서 자연스레 풀어졌다.
이 때 우리는 백금의 수력발전소 난간에 기대여 국화(國畵)같이 선이 거칠고 기세가 좋은 백금령과 북한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운 산은 녹빛인데 멀리에 있는 산은 남빛이다. 산의 색깔이 다른 까닭은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나는 시인이 아니면서도 주제넘게 시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신 교수는 숨을 죽이며 렌즈를 버드나무에 대고 있었다.
두만강가 버드나무에 잠자리 여섯 마리가 앉았다. 나래가 검은 레이스 모양으로 된 흔치 않은 호랑이 잠자리 한 마리, 수탉 볏같이 빨간 고추잠자리도 두 마리 있다. 잠자리들은 쉴새없이 날아다니는 곤충인데 이때는 중요한 회의나 하듯이 오순도순 모여 있다.

“너 이놈들 진짜 스타가 됐어. 뜬 거야! 내 카메라에 잡히면 다 스타가 되는 거여! 감사해야지. 그래, 꼼짝 말고 있어.” 신 교수가 잠자리들에게 진지하게 말해 모두들 웃었다. 신 교수는 자연과 교감하는 방식이 자연스럽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할 것 같다.

최진만 노인이 하수오의 유래를 말했다. 한 사람이 50세까지 자식을 보지 못하다가 하수오를 먹고 장가가서 자식을 보고, 자식의 이름을 수오라고 했으며, 160살까지 살았다는 것이다. 답사팀이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하는데 동우당제약회사 중국 약재 수구(收構) 담당인 조선족 박현철 경리(사장)가 토사자를 발견했다. 연녹색의 줄기가 풀과 나무들의 사이를 교묘하게 얽은 넝쿨 나물이다. 가을에 좁쌀 같은 열매가 달리는데 그것으로 죽을 쑤어 먹었더니 고소하고 맛있더라고 했다. 누군가 토사자도 그냥 먹으면 아들 20명을 낳고, 죽을 해먹으면 아들 40명은 낳는다고 농담해서 20대인 박 경리의 얼굴이 붉어진다. 토사자는 곁에 있는 식물들에 칭칭 감겨 영양을 빨아먹고 기생하는 약초인데, 성질은 야비하고 고약하지만 남자들에게는 좋은 강장제란다.

차창 밖으로 바람이 날아들긴 하지만 날씨는 무덥기 그지없다. 졸릴 때마다 산머루를 한알씩 따 먹었다. 너무 시어서 정신이 번쩍 났다. 머루줄기는 세 번 뻗었는데, 번마다 나뭇가지를 꼭 세 번씩 감았다. 자연이니 말 그래도 자유자재의 의지로 살아가는 줄로 생각했는데, 줄기가 이처럼 정확하게 세 번씩 감긴 것을 보고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신 교수는 내가 내민 머루줄기를 찬찬히 보더니 “3은 행운의 수자요, 삼삼수는 행운의 나무요. 자, 행운 축하합시다!” 라고 해서 모두들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이튿날의 코스는 백두산에서 멀지 않은 백산시 인삼답사이다. 행운의 나무와 만났으니 산신령이 보내주는 만병지령약(萬病之靈藥) 산삼을 만나는 일이 형통하다는 뜻이리라.
신 교수의 자연과의 교감방식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자연은 달이 뜨고 지고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춘하추동이 변화하는 것만이 아니다. 자연은 창밖에 있고 우리는 집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가면 만나고 집에 있으면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우리 속에 있는 것이다. 자연과의 대화는 마음이 해야 한다. 마음이 문을 닫으면 인간은 병이 든다. 자연은 우리 속에 있었다. <계속>

협찬 : 옴니허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