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정보]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 II-④
상태바
[해외정보]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 II-④
  • 승인 2005.01.14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연수목표부터 명확히 설정해야
해외 연수를 꿈꾸는 이에게

미국 현지에서 연구하는 한의사라는 연유로, ‘미국에 가보고자 하는데 어디 좋은 곳 없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미국 연수를 계획하고 있는데 추천할만한 연구실은 없는지, 미국의 연구 현황을 보려고 여행을 하려는데 추천할 곳은 없겠습니까?’와 같이 각자의 이유와 상황에 따라 다른 질문이 되지만, 그때마다 항상 하는 같은 이야기는 ‘무엇을 왜, 어떻게, 얼마 동안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을 보내주십시오’하는 것입니다.

장기간 연수의 경우에는 연구 계획서 초안을 보여 주실 수 있겠냐고 할 것이며, 단기 여행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에 관심 있는가 물어보게 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답장이 끊어지거나 이메일의 내용이 퉁명스러워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필자가 뭔가 실례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같은 일을 여러 번 겪다보니 ‘왜 달라는 답은 안주고 모르는 질문만을 하느냐’는 짜증 섞인 반응 - 도리어 필자가 화를 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뭔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으려나 싶어 궁금해 하다가도, 답변보다는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을 받게 되어 당황하면서, 보내지는 이메일들을 필자가 귀찮아한다는 본의 아닌 오해를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무엇을 하려는지 만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단기 여행이든 장기 연수든 간에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는 훨씬 용이해집니다.
장기 연수라면, 나는 왜 이런 연구를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서 나는 어떤 것들을 해 왔고, 내가 가지고 있는 연구 테크닉 중에서 너희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너희들에게서 나는 이런 것을 얻어가려고 한다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단기 여행이라면, 네 연구실에서 하는 이런저런 연구에 평소부터 관심이 많았고,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서 무척이나 궁금해왔는데, 마침 기회가 닿아 네 연구실도 한번 가 보았으면 한다. 가서 요것조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한다와 같은 것이 되겠지요.

유창한 영어로 된 것을 당장에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멋있는 종이에 근사한 형식을 갖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뭔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가다듬어진 본인의 생각을 듣자는 것입니다.

미국식 사고 아니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고 해도, 자신의 일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한 사람들을 설득하고 뭔가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노력은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해왔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더군다나 나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뜻 ‘Yes’라고 대답할 외국인 연구자들은 없을 듯 합니다.
백보양보해서 누군가 연결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줄 (가능성이라도 있을) 사람이어야 한국인으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실상 소개 혹은 추천(recommendation)이라는 것은 추천자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 중매와 같습니다.
추천의 대상이 어떠한 경력과 인간성, 장단점을 지니고 있는지,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바르게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곧 추천자의 신뢰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잔, 잘못하면 뺨이 석대’라 하였습니다.
기초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임상 연구만 하고 싶다거나, 무작정 ‘미국에서 한의학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나, 분자생물학 전공자에게 기(氣)를 이야기하는 것 등은 아무 생각이 없이 ‘그냥 귀찮게 하는 사람’으로만 치부될 것입니다. 본인과 상관없는 소개를 좋아할 리 만무한 법입니다.

또한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미숙한 경력이 부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도도 해보지 않는다면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이 해야 할 숙제는 외면한 채 감이 익어서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른 질문에 정답이 나오는 법입니다.

서양식 대학(원) 입학 원서에는 ‘essay’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고, 지원하는 이유와 Admission(입학 허가서)을 받아야만 하는 논리를 서술하는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GPA(Grade Point Average 내신)나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 입학자격시험), SAT(Scholastic Aptitude Test 수학능력평가 시험)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됩니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은 부족한 기존 연구 실적, 경력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학부 혹은 석사과정 학생이라면, 본인의 원하는바 목표가 무엇이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노트에 적어 보십시오.

당신이 필요로 하는 상당 부분은 현재 한국 한의학계에 없을 것이며 뭔가 새롭게 만들어 내거나 개척해야 할 것들이라 생각됩니다. 당신이 적고 있는 이 노트는, 지금부터 5년 후 인생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 필요할 때 빛나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지금과 5년 후의 생각을 함께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해외 연수를 위한 essay의 내용으로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문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그냥 한번 ‘미국에도 갔다 왔다’는 간판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숨기려 하거나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이 현재 모든 학문에 있어서 중심이 된 이상, 현지에 나와서 배우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연구실에는 이름만 걸어 놓고 허구한 날 골프만 치고 돌아가는 일부 양방 의사들과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와서 흘려듣는 한마디 한마디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학문과 기술의 정점에서 듣게 되는 단편 지식들은 진정 소중한 자산입니다.

무섭고 겁나서 못가는 것이며,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기 부끄러운 것이며, 바닥에서부터 시작할 의지가 없는 것이며, 한국에서의 지위와 달리 홀대를 받을 것이 두렵고, 혼자서 헤쳐 나갈 자신과 용기가 없는 것이지, 갈 곳이나 나와서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은 명백한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설령 내 분야가 외국과 전혀(!) 상관성이 없다고 자신할 지라도, 學際間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와 선진 기법(advanced technique)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는 21세기 학문 현실에서는, 주변 학문과 100% 무관한 분야, 세계 조류를 외면한 한의학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칼럼 ‘연봉 1억’>

□ 필자약력 □
칼럼니스트, 리서치 펠로우, 한의학 박사
현 : CIM, Cleveland Clinic Foundation
전 : Harvard Medical School, 한국 한의학연구원, 특전사 한방과장
연락처 : www.chaelab.or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