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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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승인 2005.09.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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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내면세계 알게 하는 책

40을 넘긴 나이에도 제 마음속에 여전히 태산(泰山)으로 자리잡고 계신 엄친(嚴親)께서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6월 중순 경 갑자기 넘어져 두부(頭部)에 외상(外傷)을 입으셨는데, 그 후 뇌 경막 아래에서 출혈(sub-dural hemorrhage)이 일어났던 까닭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외과적 수술인지라 가족을 대표하여 그 끔찍한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 정신이 또렷하게 회복되실 때까지 1주일 가량의 제 심정은 문자그대로 ‘심리적 공황’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의식이 불분명하셨던 사흘 여 동안은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했던 까닭에 너무도 심란(心亂)하였는데, 이런 저의 심리적인 상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지 우리 신계내과 수련의 선생 한 명이 위로의 책을 한 권 선물하였습니다. 생사의 길목을 넘나드는 아버지의 침상 곁에 앉아 불안·초조·긴장 속에 날밤을 꼬박 세우며 읽기에 적합한 책이었는지는 좀 의문스럽지만, 흥미진진한 내용 덕택에 10~20분이나마 집중하게 만들어 심신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읽을거리로는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Opening Skinner’s Box)’는 부제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Great Psychological Experiments of the Twentieth Century)’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세기의 놀라운 심리실험 10가지와 그 연구 결과를 소개한 책입니다. 저자는 현재 정신과 진료소 애프터케어 서비스(aftercare service) 소장으로 활동 중인 심리학자 로렌 슬레이터(Lauren Slater)인데, 저는 그가 자신의 전공분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여겨지는 천재적인 심리학자 및 정신의학자 10인을 선정한 뒤 그들이 수행한 인간 본성에 대한 실험 내용을 아주 맛깔스럽게 정리해 놓았다고 느꼈습니다. 실험 당사자와 피실험자, 아울러 그 실험과 관계 있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터뷰한 내용을 생생하게 서술함으로써 이들 실험의 탄생 배경과 맥락은 물론 그 실험의 함축적 의미와 결점까지도 독자들이 속속들이 알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책은 크게 10장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은 주무르는 대로 만들어진다’는 소제목 아래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을 소개한 1장으로부터 시작되어, 20세기의 가장 과격한 정신치료법인 뇌수술요법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 10장 ‘드릴로 뇌를 뚫다’로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우에는 책을 읽다가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저의 내면이 그대로 반사되는 느낌에 섬뜩할 때가 많더군요. 내 아이들이라고 해서 보상과 처벌, 곧 당근과 채찍으로 내 맘껏 주무르려 하지는 않았는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잘못된 권위에 맞서 당당히 싸우려고 했는지, 나와 상관없다고 해서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방관자의 침묵만을 보내진 않았는지 등등 반성거리가 수두룩했기 때문입니다.
열 길 물 속보다 알기 어려운 한 길 사람 속이 궁금한 분들에게는 ‘강추’인 책임에 틀림없는데, 저는 왜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는 노래 구절이 계속 떠오를까요? <값 1만3천5백원>

안세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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