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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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 승인 2005.09.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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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아픔과 행복 그린 이색 멜로 영화

필자에겐 명절 때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었다. 바로 참을 수 없는 아픔을 주면서 식욕까지 앗아가 버렸던 사랑니의 고통. 이 사랑니의 고통은 뽑고 나서도 한동안 지속되었고, 지금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가끔씩 고통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처럼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사랑니의 고통은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의 고통처럼 쉽게 없앨 수 없는 너무나 큰 아픔을 준다.

어려운 사랑을 선택한 이들의 아픔과 행복을 다룬 <사랑니>는 정지우 감독이 <해피엔드> 이후로 6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표현된 색다른 멜로 영화이다. 지난 주에 소개했던 <너는 내 운명>과 같은 멜로 장르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사뭇 다르게 캐릭터들의 감정이 절제된 매우 건조한 느낌의 영화이다.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조인영(김정은)은 수강생으로 온 이석(이태성)을 보고 자신의 첫사랑과 이름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똑같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자연스럽게 조인영은 이석에게 점차 관심을 갖게 되고, 이석도 자신의 여자친구와 이름이 똑같은 선생님에게 끌리게 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동일하게 하면서 우연과 함께 과거와 현실의 모호한 접점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로 인해 어른 조인영의 과거 회상이라고 생각하던 장면에 현실의 또 다른 어린 조인영(정유미)이 등장하기도 하고, 영화 속 과거의 이야기가 누구의 과거인지 알 수 없는 약간 복잡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를 따지면서 영화를 본다면 영화는 매우 지루하고, 감정이입이 단절되면서 집중도가 많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멜로 영화는 어디까지나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퍼즐 같은 이야기를 억지로 짜 맞출 필요 없이 그냥 편하게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보는 것도 좋다.

13살 연하의 제자를 사랑하는 여선생의 모습이 불륜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고정관념화 된 사회의 모습을 씁쓸하게 비추지만 <사랑니>는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사랑의 힘’ 안에서는 장벽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정은이 연기한 조인영이라는 여성 캐릭터를 주된 주인공으로 잡아 그녀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했다는 감독의 얘기처럼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는 김정은의 연기 변신과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신인 이태성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인다. 다소 낯설고, 기복은 없지만 복잡한 이야기 구성으로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가을, 사랑니의 고통처럼 아련한 첫사랑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영화이다. <상영 중>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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