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애이불비(哀而不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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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애이불비(哀而不悲)
  • 승인 2006.02.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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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여 온 나라가 들썩거릴 때였습니다.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우리가 패하면 허탈감에 폭동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던 분도 있었습니다. 당시 TV에서 본, 독일인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이한우’란 분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만약 한국이 지더라도 아무런 불상사가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한국인들은 절대 마냥 슬퍼하지 않습니다. 장례문화를 보면 알 수 있지요. 문상을 하고 ‘아이고 아이고’ 곡(哭)을 하며 슬퍼하다가도, 술 마시며 웃고 떠들며 밤을 지새우잖아요.”

상여가 나갈 때, 특히 하관할 때는 정말 슬피 울지만, 흙을 뿌린 후 ‘달공’을 할 때 보면 웃으며 합니다. 상쇠가 꽹과리를 치며 노래를 하고 후렴구 ‘에이어니 다알고옹’을 합창하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노동요입니다.

우리 민족이 소양인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소양인의 인사(人事)인 사무(事務)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슬픔을 승화시키고 마음을 일으켜 힘써 일하는 것입니다.

신승훈의 8집 앨범 ‘The Shin Seung Hun’ 중에 ‘애이불비(哀而不悲)’라는 곡이 있습니다. 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정서를 표현한 곡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승화시켜 극복하고,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내용입니다.

신승훈, 양재선 작사인데, 소양인의 정서를 잘 표현한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소양인이 슬픔에 빠져 눈물 흘리고 절망하는 상황을 ‘비애동중(悲哀動中)’이라고 합니다. 비애가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는 표현입니다.

소양인이 비애동중에 빠지면 몇 년간을 두문불출하고 폐인처럼 지내는 일도 있습니다. 그 슬픔을 극복하고 마음을 일으켜 움직이는 모습이, 비애를 극복해서 나오는 힘이란 표현으로 ‘애력(哀力)’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사무(事務)’ 즉, ‘애이불비(哀而不悲)’입니다.

이수영의 ‘I Believe’, ‘Never Again’ 등의 곡에서 신비한 동양 분위기를 만들어 냈던 황성제의 편곡이 애이불비의 분위기를 잘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슬프지만, 어깨가 쳐져있는 침울함이 아니라, 마음을 일으켜 슬픔을 극복하려 애쓰는 모습을 현악기의 역동적인 보윙으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신승훈의 노래 중 ‘보이지 않는 사랑’,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과 함께, 곡의 완성도가 뛰어난 걸작으로 일청을 권하는 추천곡입니다.
신승훈의 9집 앨범 ‘Ninth Reply’에는 ‘애이불비II’가 있는데, 애이불비와 비슷한 분위기지만, 좀 더 역동적이고 특히 간주의 사물놀이 장단이 통쾌합니다. 추임새와 함께 터져 나오는 타악기의 신명이 우리에게 ‘힘내!’하고 외치는 듯합니다.

오랜 불경기로 인해 어깨가 쳐져 있는 우리 민족에게, ‘그만 비애동중(悲哀動中)하고 마음을 일으키라’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 오랜 시간을 비애(悲哀)에 빠져 지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오래 슬퍼하고 있는 민족이 아닙니다. 이제 역동적인 사물놀이 장단처럼 마음을 일으켜 신명을 내 봅시다. 달공 하듯이 땅을 박차고 일어납시다.

김호민
서울 강서구 늘푸른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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