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성진의 영화 읽기- <육혈포 강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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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의 영화 읽기- <육혈포 강도단>
  • 승인 2010.03.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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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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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연기자들 진면목 과시
중견 연기자들 진면목 과시

걸출한 입담에 능청스런 연기 ‘큰 웃음’ 선사 

<육혈포 강도단> 
감독 : 강효진
출연 :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 임창정

얼마 전, 아카데미영화제를 시청하면서 문득 한국영화계와 사뭇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여성 영화감독이 최초로 감독상을 받은 것을 필두로 60대와 40대의 배우가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점차 중견배우들이 부모님 전문 연기자로 변모하면서 늘 젊은 배우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주고 있는 한국영화계와 달리 만만치 않은 연륜을 가진 배우들이 주인공으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할리우드의 모습이 그저 놀랍고 부러울 뿐이었다.

연기든 일이든 하면 할수록 내공이 쌓이고 진국을 보이기 마련인데, 우리 사회는 한국영화계처럼 그들의 실력을 너무 일찍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다. 현재 99세까지 즐겁고 건강하고 팔팔하게 지내자는 ‘9988’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시점에서 영화를 포함한 대중문화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실버세대의 의욕 충만함을 대변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이 출연하는 <육혈포 강도단>은 <올드 미스 다이어리> <마파도>의 뒤를 이어 막강한 중견 연기자들의 파워를 보여주면서 젊은이 중심의 한국영화 판도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8년 간 힘들게 모은 하와이 여행자금을 은행강도에게 빼앗긴 세 명의 할머니(나문희, 김수미, 김혜옥)들은 은행을 털기로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고, 전문 은행강도(임창정)를 협박해 비법을 전수받기 시작한다. 용감무쌍한 평균 나이 65세 할머니들은 기상천외한 은행강도 특공훈련을 받게 되고 드디어 권총을 든 복면강도로 변신하여 인질극까지 벌이며 은행을 점거하게 된다.

일단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떠나 <육혈포 강도단>은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이라는 배우들의 이름만으로 연기력 부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TV와 영화를 넘나드는 그들의 연기 신공은 신뢰감을 주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김수미 특유의 걸출한 입담과 특별출연 임창정의 능청스런 연기는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비록 은행강도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주된 이야기로 전개하고 있지만 여타의 영화들처럼 한탕을 위한 은행강도가 아니라 할머니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오히려 은행강도들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동화되게 한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내달리던 <육혈포 강도단>은 한국형 코미디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막판 감동을 위해 초반부의 웃음을 던져 버리고 나름대로 관객들의 눈물을 훔치기도 하지만 약간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전반적으로 뒷심이 달린다. 그러나 독일 원작을 80% 이상 각색하면서 초반부터 미리 배우들을 생각하고 쓴 시나리오는 세 여배우의 기존 캐릭터들을 제대로 맛깔스럽게 살리고 있다.

‘육혈포’는 탄알을 재는 구멍이 6개 있는 권총으로 현재는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지만 할머니 주인공들과 어울리는 옛날식 단어를 가지고 제목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육혈포 강도단>은 올해 초 외화들의 홍수 속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한국영화로 잦은 눈과 비로 봄소식이 그리운 관객들에게 큰 웃음과 훈훈한 마음을 동시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상영 중>

황보성진/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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