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희망을 말한다(Ⅱ) - 장보형 책임연구원
상태바
2013년 희망을 말한다(Ⅱ) - 장보형 책임연구원
  • 승인 2013.01.10 16: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보형

장보형

mjmedi@http://


‘근거 기반의 한의학’ 꼭 이루어지길

장 보 형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의학은 기본적으로 수천 년간 쌓아온 경험과 현재 환자들을 보면서 체득한 경험에 의해 이루어지는, 다분히 경험에 기반한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에 의해 관(觀)을 세우고 이러한 관에 따라 환자를 진료하는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적은 경험은 관을 세우거나 다시 환자를 진료하는 기반으로는 부족할 수 있지만, 수천 년 동안 기록의 축적은 개별 경험의 부족함을 보완하고도 남는 큰 힘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의 축적은 현재 한의사들이 환자를 보고 치료하는 ‘근거’가 된다.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라는 책이 있다고 한다. 필자는 아직 그 책을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서평들을 보면 현대의 의료에서는 히포크라테스 당시의 단순한 환자-의사의 관계보다 훨씬 복잡해져서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진료실에서 환자-의사 사이에서 일어나는 진료에 진료 외적인 부분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예를 들어 건강보험과의 관계,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동원해 진료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스템 상의 문제를 비롯하여 의사 개인이 잘 알 수 없는 부분까지 대답을 요구하는 상황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한의학에 적용해본다면 ‘허준은 모른다’ 혹은 ‘황제와 기백은 모른다’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고혈압이나 당뇨에 한의학적 치료가 적절할까? 이는 고혈압과 당뇨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허준 시대에는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이다.

아, 오해하지 마시라. 고혈압과 당뇨에 한의학적 치료가 소용없다는 말은 아니다. 과거에도 물론 현대적 개념의 고혈압과 당뇨가 있었고, 이러한 질환에서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변증을 하여 치료하는 것이 가능했겠지만(잘 치료했으리라 생각한다) 고혈압과 당뇨라는 현재의 정의 자체는 그 시대에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현대를 사는 한의사들은 현대에 정의된 질환에서 한의학이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의사로서 진료를 하기 위해서 단순히 환자-의사 관계를 뛰어넘어 건강보험체계나 이원화된 의료체계, 고혈압과 당뇨병과 같은 현대적 관점에서의 진단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듯 진료 외적인 상황이 개별 진료행위에 매우 큰 영향을 주게 되었는데 이는 동의보감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2012년 개정된 한의약육성법에서 ‘한의약’의 정의는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韓醫學)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韓藥事)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라는 문구를 통해 현대 주류 언어인 과학적인 한의학을 위해 도모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2013년은 온고(溫故) 뿐만 아니라 지신(知新)을 통해 한의계에 주어진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이는 다분히 한의학을 한의계 내에서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문제이다-연구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근거 기반의 한의학’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러한 근거는 짧은 기간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기존의 연구자들이나 ‘한국한의학연구원’이나 ‘한의학정책연구원’ 같은 곳을 통해 이미 구축된 기반을 잘 활용하길 바라며, 또한 사실 아직 많이 부족한 기반들을 하나 둘 갖추어 나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파도와 같이 끊임없이 제기될 한의계의 이슈에 대해 한의학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제공되길 바라며, 이를 기반으로 한 건강한 논의가 활발해지면 좋겠다. 이렇게 이루어진 근거 기반의 한의학과 한의계 내에서의 의사결정은 나를 설득하기도 좋고 남을 설득하는데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