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38) 괜스레 마음이 공허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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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38) 괜스레 마음이 공허한가요?
  • 승인 2024.04.05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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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괜히 자주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얘기를 나누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불안정하던 마음도 안정을 찾는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나면 몸의 불편한 감각도 잊혀지고, 심지어 두통이나 불안감마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찝찝한 뒤끝이 전혀 남지 않는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렇게 마음이 행복한 대화의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나의 말과 존재가 진심으로 공감(共感)을 받을 때다. ‘맞아, 맞아.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 정말 이해가 가.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거야.’ 이렇게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과 함께할 때 우리의 마음은 감동(感動)한다. 긴장이 풀어지고 마음 속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흐르며 굳었던 마음이 녹기 시작한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공감을 원한다.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타인의 마음과 안전한 통로가 생김을 의미한다. 마음 속 깊은 곳의 내밀한 것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안에 머무르면 독(毒)이 되는 많은 것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때가 바로 진심어린 공감의 순간이다.

우리를 긴장시키고 경계하게 만드는 경험과 감정의 노폐물들은 공감의 신호가 올 때까지 마음속에 머무른다. 때로는 분노(怒)로 때로는 슬픔(悲)이나 불안,공포(恐)로 변하며 우리의 간과 폐, 신장 등의 오장(五臟)을 괴롭게 만든다. 이 감정들은 기의 흐름을 방해하고(氣滯), 그로 인해 일상의 기분을 망치며 결국엔 병까지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공감을 원한다. 진심으로 공감을 받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의 눈물이 흐르면서 단단하게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마음이 그토록 원하던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지극히 평온한 행복감을 느낀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른다면 바로 이런 느낌일 가능성이 높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싶다거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도 결국 공감 받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공감은 조언하거나,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다. 마주보고 앉는 것이 아니라 옆에 앉아, 같은 곳을 바라봐주는 모습에 가깝다. ‘내가 너의 마음을 다 안다’며 던지는 조언이나 충고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위로는 말보다 침묵에 가깝다. 무슨 말이라도 당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끄덕거림에 가깝다. 좋은 말을 해주기보다 불필요한 말을 전하지 않으려는 인내에 가깝다. 이런 깊은 공감은 표정과 태도를 통해 완벽히 전해진다. 진심은 때때로 말보다 말이 아닌 것에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처받은 기억들은 쌓여간다. 그렇게 하나씩 상처의 흔적이 쌓여갈수록 우리의 마음은 단단해지려고 애쓴다. 예상치 못한 일들로 흔들리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덤덤해지려 한다. 마음의 민감성이 떨어질수록 일상의 흔들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무뎌지는 선택을 한다. 격투기 선수의 만두 귀처럼 상처받아 단단해지고 변형된 마음은 사소한 것에 크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어른스런 상태가 된다. 어르신들이 좋은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덤덤해하는 모습이 바로 그 상태다.

덤덤한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도 선택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이맘 때 보는 벚꽃에 감동하고, 아이들의 사소한 애정 표현에도 가슴 벅찬 어른이 되고 싶다. 사소한 것들이 주는 작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 공감을 받고, 또 누군가를 위해 공감해주고 싶다.

 

얼마 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 <전참시>에 유명 수학 강사 정승제씨가 나온 적이 있다. 그는 살벌한 온라인 강의 시장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마음을 다친 바 있다고 여러 방송을 통해 밝혔다. 그런 그가 “이해해. 어우 나 그거 정말 이해해”라는 이영자씨의 말을 듣고 활짝 웃으며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 공감해주는 거 너무 좋아”

정승제씨 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공감을 원한다. 얼음땡 하듯 살짝 내 마음의 한 부분에 ‘공감’해주면 마음 전체가 풀어지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의 공감이 필요하다. 그의 생각과 100%일치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거 이해해.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 충분히 그럴 수 있어.’이런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요즘 괜스레 마음이 공허하다면 누군가의 진심어린 공감(共感)이 필요할 때다.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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