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100> - 『眼花篇』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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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100> - 『眼花篇』①
  • 승인 2024.04.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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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눈앞에 아른거리는 꿈같은 봄날

  봄볕은 따사로운데, 황사와 미세먼지 탓인지 빈 들판에 아지랑이가 잘 보이질 않는다. 봄비가 한 차례 지나가자 벚꽃이 일제히 만발한 것을 보니 분명 봄은 봄이 분명한데 말이다. 노안으로 침침해진 눈앞에 낡은 사본 하나가 보인다. 책장은 헤어져 서명조차 흐릿해졌는데, 제첨부에 ‘眼花篇’이란 묵흔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 『안화편』
◇ 『안화편』

  제목만 읽어보아서는 무슨 안과전문서인가 싶었는데, 본문을 펼치자마자 목록이 먼저 나타나고 중풍, 상한, 운기, 습증, 화열, 조증, 중서로 이어지는 육음질환과 온갖 잡병증이 망라되어 있는 걸 보아하니 경험방서인 듯하다. 그런데 후반에 들어서선 오운, 육기, 오장, 음양혈론, 유주, 십이경허실, 맥결, 圖人各部 등 갖가지 내용이 등장해 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결정적인 내용은 말미에 경험과 함께 실려 있는 補瀉正勝, 補瀉作格, 相火補瀉란 항목이다. 아하하는 탄사가 나올 즈음, 좌측 판심에 해당하는 부위에 ‘正五行’이라고 적은 판심제가 눈에 들어온다. 어서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에 첫 장을 넘겨보니, 아니나 다를까 권수에 ‘舍巖正五行’이란 서제가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사암침구요결』의 이종 사본이란 것을 알아차린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뿌듯하고 벅찬 느낌이 가슴에 밀려온다. 사암침법이 독자적인 한국 전통침법임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유래와 창안자인 사암의 역사적 실존, 그리고 전승계통 등 우리에게 아직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사암침법에 대해 기술한 전적이나 전승자료 하나하나가 몹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권두에 실려 있는 緖論, 곧 사암침법론은 기존에 알려진 여타 사본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혹시나 해서 다른 사본의 ‘사암정오행서’와 비교 대조해 보니 종종 문자상 이출입이 나타나지만 이 사본의 문장이 좀 더 정밀하고 문리가 분명해 훨씬 고사본으로 짐작되는 것 이외에는 내용상 크게 달라진 것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일단 기존에 알려진 사암침구결과 동일한 계통에서 파생된 것으로 판단된다. 본문에 들어서서도 ‘中風治方補瀉迎隨別方五行正理通諸病第一章’이란 긴 항목제로부터 시작하여 ‘상한제이장’, ‘천지운기제삼장’, ‘중서제사장’, ‘습증문제오장’으로 이어지며, 기존에 알려져 있는 사암침구결과 동일한 차례로 전개되고 있다.

  본문은 각 조문별로 다소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 면당 12행으로 비교적 정연하게 초사한 것임을 볼 수 있다. 각 병증항목에서는 먼저 대개 『내경』이나 『침경』에서 주요 경전의 문구를 인용하여 입론한 병론과 치법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거론하였다. 이어 각 병증항목별로 2~4개의 요혈만을 제시한 다음, 침혈마다 甫(補)와 瀉를 세자로 일일이 기재해 놓았다.

  또 항목에 따라 正勝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정격과 승격을 구분한 것으로 보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각개 공혈에 따라 溫涼이나 迎隨, 혹은 正斜라고 적은 약호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혈성이나 보사수법, 자침방향에 따른 술기를 자세히 적시한 것으로 보인다.

  병증치법편은 이러한 방식으로 痔疾漏第四十三章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병증별 기재내역을 몇몇 사본끼리 대조해 보니 비단 문자출입만이 아니었다. 우선 항목에 따라 각기 실제 수록한 조문이 다소 차이가 있으며, 치료요혈은 대동소이하다 하더라도 정영수경합 오수혈 표기나 보사 수기법, 그리고 자침방법의 표기에 있어서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이격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한국의 전통 사암침법이 세계유산으로 공인되어 인류건강 증진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기를 봄날의 바람으로 기대해 본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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