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70] 呑吐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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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70] 呑吐集
  • 승인 2005.12.0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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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方에 대한 반성, 지방의원의 경험醫案

몇 년 전에 이 자리를 빌려 『殷壽龍經驗方』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158회 대물림 의원집안의 치료경험/2003. 5. 26일자). 殷壽龍은 19세기 중엽 전라도 고창에 살면서 고창, 흥덕, 장성, 고부 지역을 무대로 활약했던 지방 명의로서 보기 드물게 자전적 저술인 『呑吐集』을 남겼다. 필자가 이렇듯 생경한 표현을 동원하는 이유는 이 책이 단순히 선비들이 남긴 문집이나 보통 의원들이 자신의 임상경험을 적은 경험방 혹은 비방집과는 유형이 다른 복합적인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필사본 5책의 소형 책자로 얼핏 보기엔 흔히 볼 수 있는 임상경험방서나 抄寫本 秘錄類로 보인다. 그러나 각 권의 구성과 체제를 살펴보면, 이 책의 독특한 내용을 대략 어림짐작 할 수 있다.
제1책에는 경험방, ‘黃帝曰’로 시작하는 의론 1편과 偏治法, 총 72처방이 수록된 처방편이 들어있다. 여기까지는 흔히 만날 수 있는 경험방 초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2책에 수록된 19편의 의론과 3책의 錦囊覺後論과 처방집은 그것이 보통 의원이 편술하기 어려운 상승 경지의 의론과 처방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2책에 실린 의론의 제목을 열거해 보면, 五臟論으로부터 시작하여 總論, 用藥, 尋本, 大要, 大戒, 別付, 似序, 脈按, 大醒, 深究, 別陰陽, 四大成形論, 扶陽抑陰論, 女科, 兒科, 辨乙癸同源論, 傷寒別論, 火變論이 들어 있다.
또 3책에 수록된 의론 錦囊覺後論은 청대 명의 馮兆張의 명저 『馮氏錦囊秘錄』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당시 전라도 시골에 거주했던 그가 당대 최신의 중국 의학문헌을 구하여 섭렵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길 없으며, 또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담아 새로운 의론을 설파하고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제4책과 제5책에는 의학이 아닌 역술과 풍수지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평소 그가 의학뿐만 아니라 變易과 陰陽風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통 技術學에 밝은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필자가 이 책을 다시 조명하고자 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제1책에 경험방으로 소개된 44쪽의 내용 때문이다. 이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문헌처방의 경험을 적은 것이거나 가감약물이나 약간의 견해를 써 넣은 경험처방이 아니라 환자의 인적사항까지 적나라하게 적힌 실제 경험 醫案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발병과 초기 증상으로부터 진단 시의 경과, 자신의 의학적 견해와 처방 및 투약 후 경과, 예후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기록한 의안들이 들어 있다. 어떤 것은 다른 의원들과 서로 相馳된 진단결과와 誤治 사례, 혹은 감별진단 및 사후 조치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기도 하다.
이쯤해서 치험안 한편을 읽어보자. 인근에서 농사짓고 사는 申가네 큰 아들의 음증을 치료한 사례이다.

21살이나 된 자식이 간신히 혼인하였는데, 밖에서 외도를 하다가 그만 병이 들고 말았다. 증상은 때때로 한열이 일어나고 뼈마디가 쑤시는 상태였다. 그러나 원인을 모르는 까닭에 그저 평범한 ‘發表和解之劑’를 썼더니 때로 나아졌다 다시 심해지길 반복하여 스무날을 넘겨 계속되었다. 허증이 심해져 절박한 지경에 이르자 그때서야 아비되는 사람이 쫓아 와서 대책을 물었다. 보약에 시호, 황금, 강활, 방풍을 넣어 주었더니 병이 크게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었다. 약을 잘못 써 원망할 처지였으나 그보다는 겁을 먹고 더 이상 약을 쓰지 않을까봐 걱정이었다. 끝까지 책임질 것을 약속하고 한 첩만 더 써보기로 하고 황기, 백출 각 한 냥에 인삼, 맥문동, 부자, 오미자를 넣어 복용시켰더니 점차 나아져 소생하였다. 그 아비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자식을 북망산에서 주워왔다고 하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기성처방[支離之古方]에 맹종하여 아무런 의사의 판단도 없이 무조건 매달리기 보다는 ‘外變萬象’에 대응할 도리를 구하여 ‘救本法’을 제시하였던 실천적 임상의학자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올 의사학 학술대회의 주제인 ‘임상의학과 經驗醫案’에 아주 걸 맞는 책으로 연구자에게 擊節嘆賞의 격려를 보낸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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