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늦깎이 학생이신 엄마의 중간고사 과제인 영화감상문을 워드로 쳐드린 적이 있다. 그러면서 엄마가 처음으로 본 영화는 무엇인지, 영화 보느라 발생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무엇인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써보신다는 영화감상문을 통해 자신의 추억을 돌아보고 있었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단순히 영화만을 보지 않고, 누구와 함께 봤는지, 영화를 보고 나서 무엇을 했는지 등을 함께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첫사랑의 사람과 함께 봤던 영화가 있다면 세월이 흐른 다음에 우연히 그것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영화의 내용보다는 첫사랑의 아련한 느낌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사람들에게 꿈과 추억을 전해주기도 하고, 반대로 꿈과 추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스타일리시한 영화감독인 이명세 감독이 2년 만에
화려한 이력과 외모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천재 베스트셀러 소설가 한민우(강동원)는 부유하고 매력적인 약혼녀 은혜(공효진)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새롭게 집필을 시작한 소설은 잘 풀리지 않고 잦은 불면에 시달리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치 꿈을 꾸듯 이끌려 루팡바라는 술집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보라색 옷을 입은 미미(이연희)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이명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는 이미지의 언어’라고 정의를 내리면서 할리우드 영화들 때문에 이미지가 내러티브에 가려지기 시작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이야기보다는 비주얼이 매우 강한 형식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으며, 그로인해 기존 영화에서 볼 수없는 다양한 영상기법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만날 수 있다는 재미를 준다. 그러나 이야기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매우 불편한 영화가 될 수도 있어 이번 작품인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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