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복합과립제 의약분업 추진 파문
상태바
한방복합과립제 의약분업 추진 파문
  • 승인 2009.02.23 1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정부 가속드라이브 … 내용은 단순, 절차는 생략
일선한의사 “현행 보험제제 활성화가 먼저” 지적

최근 정부 일각에서 주도하고 있는 한방 보험용 복합과립제 의약분업(이하 복합제 의약분업)이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너무 조악할 뿐만 아니라 한의계의 요구와도 맞지 않아 자칫하면 불필요한 행정낭비만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복합제 의약분업론이 아직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지금까지 나온 논의와 자료를 종합하면 추진하는 측의 논리는 대체로 ▲분업을 하면 한약의 안전성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 ▲값이 저렴하다는 점 ▲처방료 수입이 늘어 한의원 경영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한약제제관리가 한의사의 통제아래 들어올 수 있다는 점 ▲전체의료비의 감소로 비용접근성이 좋아져 환자가 늘어난다는 점 등이다.

분업을 하면 경제적으로 유리하고, 한의사의 손밖에 놓여 있는 한약제제를 한의사의 통제권 내로 끌어들일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진다는 게 찬성 측의 주장인 셈이다.
실제로 분업을 하면 한의사의 처방료 수입이 일시적으로 늘어날 수는 있지만 한의계의 현실이나 양의계의 의약분업 결과에 비추어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분석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선 분업의 이점으로 거론된 안전성문제와 관련해서 한의계의 한 관계자는 “약재의 안전성문제는 분업을 하던 안하던 정부가 항상적으로 해야 할 일이므로 약재관리라는 골치 아픈 문제에서 한의사가 손을 턴다는 논리로 이 문제를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처방료 수입의 측면에서도 분업은 의료인과 약사라는 두 단계를 거치므로 한의사는 초기 진료비용이 줄어 한의원의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약국조제료가 추가되므로 총진료비가 증가해 환자부담이 늘기 때문에 한의원 처방횟수가 늘긴 늘어도 기대한 만큼 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분석이다.
처방의 이중검증과 약물남용 방지라는 분업의 목적에 비춰봐도 한약의 기미를 검증할 주체가 없고, 한의사의 오더에 따라 수시로 가감과 법제를 할 방법도 마땅찮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현실성이 결여된 의약분업 대신 현행 보험제제의 제형을 다양화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역가가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제제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약국제제보다 현행 보험제제를 환제·산제·캡슐 등으로 제형을 변경하여 사용하면 충분한데 굳이 복합과립제만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방안은 유기덕집행부 당시 고 김춘근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과장이 추진했으나 그의 사망과 유기덕집행부의 퇴진이 겹쳐지면서 빛을 보지 못했을 뿐 정부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추진이 가능한 것이어서 복합제 의약분업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나아가 원외탕전실 규정과 예비조제 규정을 활용해 다양한 제제의 다양한 제형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현행 규정으로도 혼합제제를 복합제제로 생산할 수 있게 돼 있다.
정부는 이런 부분을 먼저 추진하지 않고 복합제제 의약분업이 한약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라도 되는 듯 논의 주체인 한의계의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속드라이브를 밟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한방제도 및 건강보험 합동 TF 소위원회’에서 복합제제 의약분업을 의제로 던져놓더니 최근에는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정부 임기가 4년 남은 점을 역산하면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구체적인 액션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소위 ‘입법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런데도 정부와의 논의창구역할을 맡고 있는 한의협은 모호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의협의 모 부회장이 한의계내 여론수렴도 없이 TF회의에서 분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개진한데 이어 시도지부 보험이사에게 소속 지부장과 지부이사들을 설득해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 ‘과감한 배팅’을 주장했는데도 회장은 이사회에서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고 해명했다는 후문이어서 집행부 내에서조차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다.

한의계가 어정쩡한 행보를 취하는 사이 약사회는 내부적으로 의약분업에 대한 분석을 끝내고 ‘준비됐다’, ‘한번 해보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약사는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으나 전례에 비춰 약사회와 이해를 같이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자 일선한의사들은 강력히 반발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분업론을 접한 서울의 모 한의사는 “이미 의약분업을 경험한 양의계도 분업이 잘못됐다면서 분업의 철회를 요구하는 마당에 정부가 왜 뜬금없이 한약의약분업 논의에 불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양약사에게 한약을 내줄 수 없다는 명분 하나로 촉발된 한약분쟁이 재연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민족의학신문 김승진 기자 sjkim@mjmedi.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