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대한민국 정통성
상태바
길 잃은 대한민국 정통성
  • 승인 2010.06.23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세영

홍세영

contributor@http://


역사학계 ‘스타군단’ 교사들에게 말하다
길 잃은 대한민국 정통성
역사학계 ‘스타군단’ 교사들에게 말하다

<5人5色 한국 현대사 특강>
이만열, 정태헌, 한홍구, 서중석, 정영철 공저. 철수와영희 刊.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서면 아우슈비츠가 연상된다. 붉은 벽돌에 일본 취향의 서양풍 모양새 때문이리라. 승산 있는 싸움은 싸울 흥도 난다. 하지만 승산은 없으나 차마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싸움이라면? 형무소에도 급이 있다면 서대문보다는 아우슈비츠가 더 인간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작년 뉴라이트를 표방하며 왜곡된 역사관을 휘두르던 인사들 덕분에 나왔다. 근현대사를 전공한 유수 대학 교수진으로 구성된 역사학계의 ‘스타 군단’이 현직 역사교사들에게 강의한 내용이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부터 최근 정부에 이르기까지 망라했다. 어려운 국면에서 나온 만큼 어조가 유난히 쟁쟁하다. 임상강의 녹취록을 읽을 때 머리에 쏙쏙 들어오듯, 이 책도 녹취라는 수고를 거쳐서 읽는 재미가 난다.

저자들은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갈고 닦은 칼솜씨를 발휘한다. 진보 대접 받는 보수, 보수 흉내 내는 극우 등 시각 교정부터 다시 해준다. 눈에 뜨이는 내용은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식민지 경제 성장의 허위성, 제헌헌법과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미, 항일무장투쟁, 친일파에 대한 다양한 접근, 북한 현대사 등이다. 이것만으로도 솔깃하다. 저자들의 어조는 자못 ‘진보’적이지만, 저자들이 진보와 보수에 대해 내려준 정의를 다시 적용한다면 이들의 시각은 사실 ‘보수’에 가깝다.

이 책에서 지적한 내용 중, 의도적으로 역사교육에서 소략하게 다루어지는 제헌헌법과 임시정부에 대한 서술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국가상을 돌이켜 보여준다. 닦고 윤내어 세뇌를 시켜도 모자랄 내용을 소 혓바닥 지나가듯 훑어 없애는 사람들의 의도는 자명하다. 잃어버린 정통성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정통성을 찾자니 제 발등을 치겠고, 발등을 보전하자니 역사에서 지우는 수밖에.

저자들이 쏟아내는 역사의 무게는 자못 무겁다. 이청준의 <소문의 벽>에서 주인공 작가가 ‘미치광이’가 된 이유는 자신의 진술 욕망과 외부세계와의 갈등 때문이다. 추측컨대 역사학자들이 나선 이유는 자신의 정신건강 이전에 사회의 정신건강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의사를 믿지 않고 무당 말만 믿는 환자는 못 고친다고 했다. 이 시대의 무당은 과연 누구일까?

홍세영/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