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처방한 아내 벙어리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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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대로 처방한 아내 벙어리 만들어
  • 승인 2010.06.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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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규

황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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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뜸 등 무면허 불법의료행위 위험 ‘경종’
멋대로 처방한 아내 벙어리 만들어
침뜸 등 무면허 불법의료행위 위험 ‘경종’

제주도 한의계 열전(1)- 名醫 진국태 등 

제주특별자치도는 예로부터 한약재의 생산지로써 <탐라지>에는 귤류, 치자, 안식향, 필징가, 후박, 석곡, 팔각, 해동피, 천초, 두충, 천문동, 맥문동, 영릉향, 만형자, 향부자, 지각, 반하, 오미자, 연복자(목통의 특이한 종) 등의 식물성 약재를 싣고 있으며,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과거 매화록의 산지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한라산(영주산)을 중심으로 특이한 자연환경과 함께 藥局을 설치하였고 조선시대에는 監官과 審藥(종 9품), 醫生(일제시대와 다른 제도), 藥漢 등의 관원을 두기도 하였던 곳이다.

이런 의학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제주도를 중심으로 여러 구전문학적 내용도 전해오는데 月溪 秦座首(진국태: 1690~1745?)와 左조의 등의 名醫 이야기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상인 醫女班首 김만덕의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齒蟲과 諸瘡을 제거하는 治齒醫女 장덕 그리고 제자 귀금, 황을 등이 있고 김만덕 또한 수록되어 있다.

우연히 관광지를 둘러보다가 고산 수월봉 기상대의 도로 변에 있는 제주도의 원로 한의사 진태준이 세운 ‘한의사 좌임관’의 공덕비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는데 이번 호부터는 ‘제주특별자치도 한의계 열전’의 내용을 풀어 보겠다.

“한의사 겸 의사인 진태준은 ‘궁벵이’와 ‘하막- 무당개구리’ 관련 논문과 ‘제주도 민간요법’ 등을 저술했는데 제주도의 토속적인 치료에 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먼저, 名醫 진국태의 이야기가 있는데 1900년대 이후에 만든 그의 비석은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 진가 여부를 떠나 요즘 자주 제주도에서 거론되는 침, 뜸을 한의사가 아닌 비전문가가 시술하자는 일제시대 의료제도의 잔존물인 침사의 말에 시사해주는 이야기가 있어 언급하고자 한다. 제주도는 과거 목축업 성행으로 인해 治腫치료를 잘 하였던 한의사가 많았던 것 같은데 대표적 이야기가 조선의 왕을 치료한 ‘진국태’와 왕후의 종기를 치료한 ‘좌조의’의 이야기가 있다.

특히 진국태는 자신의 부인이 자신의 처방을 풍월로 듣고 그 처방을 맞지 않는 사람에게 이야기하여 환자가 고통스러워 하자 그가 침으로 부인을 벙어리로 만들었다고 구술하였는데 이는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고 부작용에 대한 의료적 책임과 함께 무면허 돌팔이들의 무분별한 침과 뜸, 약물시술에 대한 전문인의 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을 예로부터 이야기로 구술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제주도는 토속적인 신앙의 내용들이 많은데 필자가 제주도 사람은 아니지만 알토산의 해변바위에는 아직도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 실제 제주도의 원로인 한의사 겸 의사인 진태준은 ‘궁벵이’와 ‘하막- 무당개구리’ 등에 관한 관련 논문과 ‘제주도 민간요법’ 등을 저술하였는데 제주도의 토속적인 치료에 관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제주도는 과거 고려시대의 몽고항쟁의 마지막 근거지인 삼별초 항쟁 지역으로 근대사에서는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항일 무장운동인 ‘제주도 법정사 항일운동’에도 한의사 정구용(경북 출신의 승려 한의사)이 있는데 3.1운동 이전의 국내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으로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한의사 변태우-1922년 10월에 의생면허(한의사)를 취득 → 1940년 1월12일에 한지의업면허(면허번호 878번)를 취득 → 해방 후 양의사-는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로 등록되어 있는데 <제주 평화박물관>의 가마오름 정상에서 보이는 ‘알뜨랑’비행장은 당시 일제시대의 한의사들의 고초를 볼 수 있는 유적이다.
조선시대에 제주도를 대표하는 성씨로 濟州 高氏가 있는데 <태의원 선생안>, <의과선생안> 등에 기술되어 있다. 그 집안은 대대로 전의감과 혜민서 등에 종사하였으며 고재성, 고진항, 고경은이 의과에 합격을 하였으며 고경은은 太醫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고영석(갑신정변 관련)처럼 특이하게 문과에 합격한 사람도 있다.

일제시대 최초의 제주도 의생으로는 1914년 최치경, 장한규, 김규배가 면허를 획득하였다. 이후 같은 해 김의정, 강기조가 면허를 획득하였다. 처음 면허를 취득하신 5인 중에는 김의정이 73세로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이 분의 내력을 살펴보니 同名異人인지 제주도 오현단 건립 인물과 시대가 겹친다. 이후 1918년에 현지준, 최병룡 1919년에는 고용식이 1922년에는 김홍기가 고두문, 박맹호, 변태우가 있다.

“국내 최초의 항일 무장운동인 ‘제주도 법정사 항일운동’에 승려 한의사 정구용이 들어있는데, 이는 3.1운동 이전 국내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 제주도 한의사회의 탄생= 제주도 한의사회는 1923년 12월 <全鮮醫生會>의 정관 규정에 의해 지회의 설립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는데 매일신보 1923년 12월7일자에 “회장에 최치경, 부회장에 장한규를 선임”하여 濟州 醫生會(한의사회 전신)를 설립하였다고 보도됐으며, 동아일보 1923년 12월5일자에 “去月 1日 하오 3시에 제주도 성내 장한규氏弟에서 최치경, 장한규, 변태우 3氏의 발기로 제주의생회를 조직하얏는데 그 임원은 如左. : 회장 최치경, 총무 장한규, 간사 김홍기, 변태우 외 二人 (제주).” 라고 보도했다. 이상에서 보면 최치경, 장한규, 김홍기, 변태우 등이 제주 의생회의 창립에 기여하였다.

■ 일제시대 일본= 일제는 제주지역의 수탈을 목적으로 제주도의 문화와 관습 등에 관한 연구를 한 사람이 있는데 한의학 논문에서 인삼에 관해 기술할 때 빠지지 않고 인용하는 문헌인 <인삼사>를 저술한 일본인 ‘이마모라 도모’(今村鞆 : 1870. 9. 30~1943: 조선반도 사회연구자, 제주 경찰서장)가 있다. 그는 토지조사에서부터 이방인으로 제주도 풍습과 문화에 관해 수탈을 목적으로 저술했는데 오늘날에도 인삼과 길경, 사삼 등의 논문은 많이 인용되고 있다. 최근에도 Akom(대한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서 그의 서적에 있는 일부의 글로 한의사들이 활발한 토론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계속> 

황연규/ 마산 성신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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