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 돈키호테… CF촬영 제의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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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돈키호테… CF촬영 제의 거절
  • 승인 2010.10.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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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경

김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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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생 금오 고락기(1)
별명 돈키호테… CF촬영 제의 거절
의생 금오 고락기(1)

“얼룩진 역사의 뒤안길도 언젠가는 드러내야 할 증언들인데 부끄러운 금오의 역사도 들춰낼 것” 

김홍경 한의사가 제자들과 함께 무료진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금오 의생 고락기 연재 배경
독자 제위께서 읽으시기 전에 미리 구하는 양해 한마디; 군데군데 말의 흐름이 끊기는 오류를 각오하고 괄호 안에 넣은 주해는 궁색한 묘안인데 급하신 분은 따로 표시된 대로 얼른 괄호를 뛰어 넘어 독파하시기 바람. 이 원고는 곧 출판용인데 친절한 주해를 따로 아래에 넣자니 또 맛이 없어서 누더기 기우 듯이 넣은 해설도 또한 한 세계의 편린을 엿볼 수 있사오니 시간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재미로 사회의 곁가지 실상을 음미하시기 바람.

괄호 안의 요약된 ‘썰’도 따로 허락한 지면으로 더욱 차분하게 야금야금 공개할 용의가 차차 있게 될 것이므로 기대하셔도 좋음. 그늘진 이야기로 얼룩진 역사의 뒤안길은 언젠가는 드러내야 할 증언들인데 부끄러운 금오의 역사도 들춰낼 것임. 하물며 공적으로 사적으로 견딘 영욕의 역사를 괄호 역사로 설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음.

영욕의 금오 자화상
수많은 핍박(? 설마 한의학계의 핍박? 특히 대학가 교수들이 모여서 금오의 고향 대전 근처의 유성에서 탄핵마저 자행했던 시절은 얼추 25년 전 풍문에 들었고 한 대학 교수는 바로 금오의 고등학교 선배인데 만나자마자 네 별명이 돈키호테라면서 빈정거림. 더구나 모 대학에서 학생회의 초대를 응한 금오의 강좌가 한의대 동창생인 학장 나으리님의 저지로 불발됨. 십수 년 전 어떤 학생의 생생한 증언에 의하면 사암도인침술원리 40일 강좌를 수강했다는 이유로 교수님에게서 위험을 감수하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들었다는데 다행히 그 위험이 결국은 무엇인지 모른 채 이 학생은 졸업하여 면허 취득함 등등 의혹의 암시적인 박해의 역사는 또한 페이지임)과 영욕(2000년도 초에 썰을 푼 교육방송 51회 김홍경이 말하는 동양의학으로 대중에 한의학을 홍보했다는 공로로 한의사협회의 상도 받고 더 나아가 세간의 유혹은 CF 촬영으로 이어진 적이 있어 거절하기까지는 적지 아니 마음이 흔들린 과거가 있음)의 세월이 금오를 수놓았다. 

“도올에 이어 교육방송 강의 나갔는데 혹시 도올이 금오 혓바닥을 강력 추천하지 않았나 싶다”

가문의 수치
그러나 실로 욕된 것은 한의대 입학이 가문의 치욕이던 60년대의 삼류대 평판 속에서 죽지 않고 견딘 것이 가장 모욕이었음. 그래도 명문대 원서를 기꺼이 써줄 정도의 가문의 수재인 3살 어린 입학생, 기대주 김홍경이 낙방 후 선택한 1967년도 6년제 변신의 경희대 한의예과 덕에 명문대 집안의 분위기는 풍비박산.

녹취 증언; “일본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다 해방 후 충남 금산군 복수면 다복리에 한약방을 차리신 조부(金基洋)의 유업을 이은 셈이 어쩌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냉대 받는 한의학보다 양의를 권유했어요. 숙부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양의가 되어 계셨는데 6년 내내 양의대로의 전과를 권유하셨지요.”

“일본에서 법대를 나온 아버지(金準九), 경성대 사범대 출신의 어머니(朴鎭順)는 한의대에 진학한 아들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모친은 그래도 할아버지의 혼이 작용한 것 같다고 믿어보려고 자위 삼아 노력하시면서 그 숱한 서울 유학의 학비를 책임지셨지요. 물론 낭비벽의 저를 망치는 송금이라고 견제하시는 부친과의 불화도 감수 하시면서 신뢰를 해주셨지요. 재원은 계주 노릇으로 재야 지하금융(?)을 관리하시면서……. 그러나 이 김홍경이 경주 김씨 충암파 집안의 부끄러움은 여전한 것이 진작 얻어 놓은 별난 수재라는 명성(?)에 금이 간 거지요. 1950년생인데도 1954년에 초등학교(충청남도 공주의 봉황초등학교)에 입학시켜서 그런대로 쫓아가는 아들이 대견해서 여러 번 휴학시키려다 밀어붙인 공부였는데 충남 제일의 대전고등학교에서 서울대 의대 원서를 의심 없이 써줄 정도로 당당한 아들이 재수 끝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최하위의 한의대를 자원해서 다니는 꼴은 일종의 일류대 명가의 치욕이라고 생각도 들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30년 내다보는 혜안과 방송 인연
그러나 머언 훗날 지금의 천재들 수능 점수 고공행진으로 더불어 누리는 언필칭 동일시 심리현상 망상인 일류 평판으로 금오 주위에서는 삼십년 내다보는 한의학 인기 태풍의 혜안(慧眼)을 가졌다는 등 아부가 좀 자자함? 허!! 속에서도 끈질기게 사암침법을 가르쳐온 공덕으로, 불초 금오가 작금에 민족의학신문에서 조사한 ‘한의학계의 영향력 있는 21명’ 중 한 명으로 뽑혔습니다. 사암침법이 정식 수업으로 뽑히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대중과 호흡을 나눈 덕에 도올 김용옥님과 더불어(도올님과 같이 작은 공부모임을 만든 이야기와 헤어진 동기 등등 숨은 역사와 도올님을 1990년대 경희대와 동국대 강사로 모시기까지의 대학가 모 교수님이 주동이 된 정성이 얽힌 뒷 ‘야그’는 훗날 한 페이지임. 우연인지 교육방송 1회 노자 강의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도올님을 이어 3번 타자로 나갔는데 혹시 도올님께서 이 금오 혓바닥을 강력 추천하지 않았나,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남. 왜냐하면 그 시절 금오가 받은 제안은 좀 분수 넘치는 제안이었음) 한의학계의 스타강사라는 영예로운 칭호까지 붙여주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김홍경/ 한의사. 사암침법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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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2010-10-06 20:05:18
금오 김홍경 선생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겁니까?

2010-10-04 15:40:06
지금은 영향력있는 인사 21인중 한분이시지 않습니까

독자 2010-10-03 09:21:19
학생때, 졸업후 금오선생님 가르침을 잘 새겨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가르침 많이 주시고요.
선생님께서는 한의학계의 귀중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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