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생 금오 고락기(8)
상태바
의생 금오 고락기(8)
  • 승인 2010.11.18 0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홍경

김홍경

contributor@http://


“사암침법 어려운 건 진단법이 어렵기 때문”

의생 금오 고락기(8)

“사암침법 어려운 건 진단법이 어렵기 때문”

면허 없는 국보급 스승들
저는 면허 없는 주역학자 아산 선생님에게 한의학을 배웠습니다. 울산의 문수장이라는 여관에 투숙하실 때 잠이 없는 필자를 칭찬하시며 어느 날 새벽에 제게 ‘주역 팔괘에서 건(乾), 곤(坤)은 독맥과 임맥으로 떼고 6가지 괘상과 경락을 붙여봐라’는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새벽의 그 한마디 힌트를 얻고도 그 당시에는 잘 모르고 있다가, 수덕사 방장 혜암 사부님 밑에서 공안법(公案法)을 공부하던 중 문득, 아산 선생님이 하셨던 그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입산하여 약 1년에 걸쳐서 연구하여 괘상과 경락을 연결시켰습니다.

제가 그려낸 가설은 기초가 주역에서 유래하지만 실은 무면허 주역학자이신 아산 선생님의 은덕으로 개발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산 선생님께서는 진료행위를 시도하신 적도 없으시지만 주역의 관점에서 풀어가는 경락학 등은 가히 절세불출의 학문적 접근이었습니다.
철학적인 관점은 비록 한의사가 아니더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만 종종 보이는 국법을 무시한 행동에는 견제가 있어야만 합니다. 자고로 정중한 스승님들이 설사 한의학을 아는 것이 있어도 직접 법을 어겨가며 무면허 진료를 삼가 온 역사는 천하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60혈은 다 외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60혈을 가지고 곱하기 나누기 하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존경하옵는 대전의 석학 이동원 선생님께서도 한의사 제자들을 양성하셨지만 시술할 의원을 열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동원 어르신을 국보급의 스승이라 증언한 것은 조선일보 기자가 와서 물어서 답한 내용입니다.
살아 생 전 한번 뵌 일밖에 없지만 수많은 한의사들의 사표가 되시는 어르신네의 학문은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무면허라는 말이 사족같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는 수 없이 무면허 스승이라는 말을 쓴 점 용서바랍니다. 그저 스승에는 면허 유무가 아니라 그 분의 철학적 혹은 도학적 관점에 있다는 말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동양의학 관련 혁명
사암침법을 보면 족소음신경을 보하면 허리가 낫는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요통문에 보면 수양명대장경이 요통을 고친다고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에 대장이란 수분을 흡수하는 것쯤으로 밖에 더 생각을 하겠어요? 또 여자들 경도불순에 수태양소장경을 쓰라고 하는 데에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아찔할 것입니다.

사암침법의 어려움은, ‘허한 것은 보해 주고 실한 것은 깎아주면 된다’는 대원칙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단법 상의 어려움을 일컫는 말입니다. 제가 이 강의를 시작할 때 책을 구하려고 행림서원에 갔더니 사암침법 책이 절판이 되었다나요. 이유를 물으니 어려워서 책이 팔리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의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권씩은 다 갖고 있는 이 사암침법 책이 왜 먼지구덩이 속에 머물러 있었겠습니까? 이까짓 60혈을 가지고 ‘허즉보기모 실즉사기자’ 원칙에 따라 하자면 머리 좋은 사람은 하루면 끝낼 겁니다.

“사암도인이 쓴 사암침법의 이론이란 것이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뿐이었어요”

아무튼 여러분 우선 60혈은 다 외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60혈을 가지고 곱하기 나누기 하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수양명대장경을 보하는데 어떻게 허리가 나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또 장궁노현(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등이 굽는 증세)에 수태음폐경을 쓰라고 했거든요. 해부학의 상식상 폐는 호흡기인데 어떻게 그런 경우에 쓸 수가 있을까요?
사암침법이 어렵다는 이유는 바로 진단법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진단법! 사암도인이 어째서 그걸 썼는지 진단상의 이해가 가지 않으면 사암침법의 숱한 임상례가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무 것도 모르고 썼는데도 기가 막히게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양방병명에서 자유로워야
제가 대전에서 개업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멋있는 곳에 간호사를 4명씩이나 두고 종합한방병원의 꿈을 꾸고 있었지요. 갓 졸업한 사람이, 그것도 졸업한 해에 간호사를 넷씩이나 두고 했으니 아주 어린 나이에 시작한 셈이지요. 그런데 요즘 말로 척추디스크라는 환자가 왔어요. 아참! 척추디스크라는 말이 나왔으니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한의사들은 양방 병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 환자의 요통이 잘 낫지 않아서 답답하던 차에 사암침법 책을 펴 보게 되었어요. “척추나 근골이 끊어지게 아플 때에는 수양명대장경을 써라” 이렇게 써 있더군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수양명대장경의 보사법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아주 가는 일본 침을 대롱에 넣고 쿡 찔러 놓고는 보사를 한다고 튕기기도 하고 좌삼삼, 우삼삼(?) 영수보사, 원보방사에 맞지도 않게 돌려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익히질 않았으니 보사행위가 정확할 리가 없었지요. 그렇게 대충 했는데도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정말 사흘만에 걸어 다니시더라고요.

그래서 ‘아하! 여기에 확실히 무엇이 있는가 보다’ 하고 그 다음부터는 허리만 아프다 하면 수양명장경을 썼는데 하나도 낫질 않더군요. 그것 참 이상하데요.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암도인이 스님이었으니 스님 노릇하면 가르쳐 주나 보다 하고 결국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아주 급진적인 행동파였거든요.

읽을수록 딜레마의 연속
깨달은 점 하나는 일전에 제가 요통환자를 낫게 한 것은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었다 이거지요. 그런데 사암도인이 쓴 사암침법의 이론이란 것이 어찌된 건지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뿐이었어요.
한국의 한의학계에 있는 사람들 중에 사암침법 책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서 정지가 됩니다. 예를 들면, 위장병에 족태음비경을 쓰는 것은 이해가 가고, 호흡에 이상이 있을 때 수태음폐경을 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일치 되므로 이해가 가는데 소위 구루병이라는 등이 굽은 병에 같은 폐정격을 쓰고, 생리불순에 수태양소양경을 쓰거든요. 바로 이러한 엄청난 모순적인 부분에서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행적 관점만으로는 이해 안돼
신장과 소장의 예를 들어 봅시다. 신장의 양방적인 사고방식은 소변을 걸러내고, 어쩌고 하지만 우리 한방에서는 오행상 수라고 6년 내내 가르칩니다. 그렇죠? 여러분이 사암침법의 신을 보하는 침을 배웠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경거, 복류를 보하고 태백, 태계를 사하면 신경을 보하게 되는 것인데, 신경을 보함은 몸이 찬 사람에게 써야 될까요? 몸이 더운 사람에게 써야 될까요. 아하! 신장은 오행으로 보면 수니까 당연히 건조한 사람, 몸이 더운 사람, 소위 열성병에 써야 되겠구나(이거 외우면 큰일 납니다. 뭔가 모순을 제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신경락을 보함은 열성병에 써야 합니다. 그렇지요? 신장과 수가 동일시되는 한 말입니다.

“오행상의 성립 논리만으로 상황 판단을 하려고 하니까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일반적으로 소장경을 보한다고 하는 것은 소장 자체가 오행상 화니까 거꾸로 이야기하면 차가운 한병에 써야 하겠죠? 그러나 오행상의 성립 논리만으로 상황 판단을 하려고 하니까 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가령, 여자들 월경불순에 ‘소장정격을 써라’라고 했는데 뚱뚱하거나 말랐거나 간에 하여간 몸이 찬 사람에게 써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도대체 소장경을 경도불순에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그 사람 몸을 좀 덥게 하자는 것입니까? 신장을 보한다면 몸에 물을 넣어주자는 것입니까? 그러한 단순한 오행적인 관점만 갖고는 사암침법 책 몇 페이지도 읽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행적인 관점 외에 육경이라는 것을 대입시켜 풀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외기를 일컫는 육기 즉 풍 한 서 습 조 화는 나중에 대비시켜서 풀도록 하고 먼저 육경부터 풀어 나가겠습니다).<계속>

김홍경/한의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