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천국의 속삭임
상태바
영화읽기-천국의 속삭임
  • 승인 2010.11.18 12: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보성진

황보성진

contributor@http://


영화읽기-천국의 속삭임

“눈을 감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장애 소년들의 기적같은 도전, ‘눈물샘’ 자극


감독 : 크리스티아노 보르토네 / 출연 : 프란세스코 캄포바소, 루카 카프리오티

필자가 중학교 2학년 때 쯤으로 기억된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희곡을 가지고 연극이 아닌 라디오 드라마로 반 학생들이 성우가 되고, 음향기사가 되어 녹음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가물가물해진 기억이지만, 그 때 필자는 연출을 맡아서 각종 효과음을 준비해야만 했다.

총소리를 내기 위해서 동네에서 장난감 총을 빌리기도 했고, 귀뚜라미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밤마다 마당에서 왔다 갔다 했는데 결국 귀뚜라미 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해 당시 유행가였던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이라는 노래의 가사인 ‘창 밖에 귀뚜라미 울고’로 대체했던 우스운 일도 있었는데 중학생이었던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경험이자 추억이었다.
이런 아련한 추억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 최고의 영화음향감독인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천국의 속삭임>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이 영화는 2009년에 소개했던 <블랙>처럼 앞을 못 보는 장애 소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으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자상한 부모와 뛰어난 외모, 총명한 두뇌를 가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소년 미르코는 우연한 사고로 인해 시력을 잃게 되고 집을 떠나 맹아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미르코는 모든 희망을 잃고 스스로 어둠 속에 갇히게 되고, 그 곳의 교육을 거부하게 된다. 하지만 천사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위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적에 도전하게 된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늘 그러하듯 <천국의 속삭임> 역시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내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멋진 공연을 선사하면서 감동을 주고 있다.

앞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정상적인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사회적인 현실을 우리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공연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앞을 못 볼 뿐 정상인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소리로 이루어진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인 규칙에 의거해 장애인들의 재능을 제대로 발굴해 내지 못하는 교육과정을 풍자하면서 그들에게도 미래와 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천국의 속삭임>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들의 순수한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며, 문득 눈을 감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준다. 그리고 예전처럼 친구들과 함께 우리들의 이야기를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는 즐거운 상상도 해보게 된다. <상영 중>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