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71) - 沈希澤(생몰년대 미상)
상태바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71) - 沈希澤(생몰년대 미상)
  • 승인 2011.02.10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남일

김남일

contributor@http://


「東醫寶鑑」과 「內經」에 달통한 전염병 치료 전문 한의사

한국 최초의 한의학 학술잡지인 「漢方醫藥界」 제2호에 沈希澤이라는 한의사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朝鮮醫生會幹事沈希澤君
君이 達理寶鑑之玄妙며 心靈素之深奧야 診病如神며 用藥以法니 四方之來問者ㅣ 不計其數라. 於京師에 傳染病이 大熾어 君이 無料治病者不止幾百人니 自此로 名聞一世러라.”

심희택에 대해서 이 자료 이외에 어떤 다른 정보도 발견되지 않기에 그의 생애를 그려내기에는 무리가 많다. 다만 위의 글을 통해 沈希澤이란 인물의 학술적 경향성을 파악해볼 수 있을 뿐이다.

먼저 그는 「東醫寶鑑」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은 “君이 達理寶鑑之玄妙며”라는 문장에 나온다. 아마도 그가 「東醫寶鑑」을 임상에 기본 지침서로 활용하여 어느 정도 그 이치를 꿰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 시기 「東醫寶鑑」은 한국의 한의사라면 기본으로 숙독하는 의서였다.

다음으로 그는 「靈樞」와 「素問」 즉 「黃帝內經」에 조예가 깊었다. 이것은 “心靈素之深奧”라는 말을 통해 이해된다. 이를 통해 沈希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기초이론과 임상이 연계되는 지식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가 「黃帝內經」과 「東醫寶鑑」을 모두 깊이 연구했다는 것은 그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지식을 추구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診病如神며 用藥以法니 四方之來問者ㅣ 不計其數라”란 말은 이러한 그의 학술적 바탕이 있는 치료법이 널리 알려져 환자가 많았음을 표현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의 봉사활동이 언급된다. “於京師에 傳染病이 大熾어 君이 無料治病者不止幾百人니 自此로 名聞一世러라”라는 것은 그가 서울에서 전염병이 돌았을 때 무료로 진료에 나서 수많은 사람을 살리게 되었고 이로부터 이름을 떨치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沈希澤은 1914년 무렵 朝鮮醫生會의 幹事를 맡으면서 한의사회의 조직화를 위해 힘썼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