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 ‘한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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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한자의 역설’
  • 승인 2011.02.2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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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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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형성 원리의 심화 학습서

김근 著  /  삼인 刊
신묘년의 출발과 함께 한달 내내 계속되던 혹한이 입춘을 지나면서부터는 확실히 풀이 죽었습니다. ‘삼한사온’이라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의 특징마저 완전히 무시했던 한파도 시간의 흐름만큼은 절대 거스를 수 없나 봅니다.

어?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의 문장에 들어간 한자 단어들을 우리 한의대 학생들에게 쓰라고 했을 때, 과연 얼마나 써낼까라는…. 지나친 기우라고요? 글쎄요. 요즘 친구들은 경혈가·약성가까지도 한글로 쓰고 외우던데요?

아시다시피 한자는 지구상의 가장 대표적인 표의문자입니다. 글자 자체에 개념이 담겨 있어서 보기만 해도 뜻이 전달되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이미지로 소통하는 문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한의학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선현들의 사상이 녹아 든 한자를 자꾸 써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자가 어떻게 관념을 형성하는지, 한자가 어떻게 사물의 질서를 구성하는지 파악해야만, 원전 또한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쉽지 않습니다. 가령 怯心과 懼心을 정의한다고 했을 때,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겠어요?)

서강대 중국문화학 전공 김근 교수님의 「한자의 역설」은, 이런 저런 점에서 심란했던 차에 읽었던 책들 중 단연 최고였습니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아이콘·이모티콘·로고 등과 같은 이미지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의미를 공유하는 현상을 통해 우리는 논리성의 정화인 컴퓨터가 궁극적으로는 비논리적인 이미지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한자가 갖는 표의성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여실히 입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논리성을 극도로 추구하다보면 종국에는 비논리를 만나게 된다는 헤겔의 역설이 여기서도 증명된다.”는 저자의 문장을 접하는 순간, 수년간의 답답했던 체증이 말끔히 해소되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책은 모두 9장으로 구성됩니다. ‘왜 한자를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1장의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서, 한자의 언어학적 특성이 권력 담론에 자연스레 편입되는 과정(2·3장), 역사의 흐름에 따른 한자 서체의 발전 양상(4장), 역대 권력의 이데올로기 생산 과정에서 산출된 결과물인 ‘설문해자’에 대한 해설(5장), 관념 형성 기능을 통한 한자의 헤게모니 구성 원리(6장), 소위 ‘육서(六書)’를 통해 한자가 구성하는 사물의 질서(7장), 역설을 수용하는 중국 문화의 패러다임(8장) 등을 설명한 뒤, 마지막 9장에서는 한자의 속성과 기능이 중국 문화의 원형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 형식이랍니다. 저는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김 교수님의 명쾌한 설명에 감탄을 연발했는데, 독자분들 또한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시리라 확신합니다.

안세영 /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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