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한의대, 이래서 서울대에 설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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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한의대, 이래서 서울대에 설치돼야 한다
  • 승인 2003.04.2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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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잔재 청산, 우리의학 맥잇기의 전기

복지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국립대에 한의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국립대 한의대 설립 논의가 불붙고 있다.
복지부의 의견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지만 3가지 정도의 갈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서울대에 설치하는 방안, 지방 중점대에 설치하는 방안, 혹은 별도의 국립한의대 설립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국립서울대의 과제

한의계는 오래 전부터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내에 한의대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는 이왕이면 서울대에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01년도에 한의협의 요청에 따라 서울대에 공문을 보내 세계 최고의 한의대 설치, 육성 차원에서 정원 40명의 한의학과 신설 여부를 물은 바 있다.

이 당시 서울대 당국은 ‘한의학과 신설관련 의견’이란 글을 통해 “한의학 육성 여부는 현대의학 및 국민의료 상황과 연계하여 판단할 상황이며, 궁극적으로 현대의학과 일원화가 이루어져야 할 사항”이라면서 “한의학의 바탕이 현대의학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의학의 일원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과학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서울대측은 “한의학의 과학화가 국가정책으로 채택되고 정부의 적극적 지원하에 과학화 추진이 시행되는 경우 서울대학교는 한의학의 과학화 및 학문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기관이나 대학원 과정을 설치·운영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수 있음”이라고 답변했다.

이런 답변은 서울대 의대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판단되지만 현재까지 서울대 당국에서 나온 유일한 공식답변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 답변은 결국 학부는 안 되고 대학원 과정에서나 설치를 검토해볼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의계는 이에 대해 “임상은 빼놓고 이론적, 철학적으로만 접근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지적함으로써 서울대측의 답변이 한의계의 요구와 거리가 먼 발상임을 재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에 한의대를 설치할 수 있을까? 한의계는 서울대내 한의대 설치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인식하면서도 당위성에 대해서만큼은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역설하고 있다. 한의계의 주장 중 타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국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있는 서울대에 한의대가 생겨야 인재풀의 의사소통과 학문연계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서울대내 82개 학과와 학문간 교류를 할 때 한의학에 부족한 과학화의 잇점을 저절로 흡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의학의 과학화를 위해

둘째, 설령 한의학이 과학화되지 않았다고 인정하더라도 과학화되지 않은 것은 학문 자체가 비과학적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체계적인 연구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조선과 중국의 의학이 발전했던 것은 국가의 지원아래 대대적인 연구사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사학재단의 열악한 연구지원 및 투자규모로는 한의학 관련 연구에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한의학은 내과질환과 난치성질환에 매우 효과적인 의학으로써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경쟁력있는 분야다. 그러므로 국가를 대신해서 학문을 연구하는 서울대가 나서야 한의학은 발전한다.

셋째, 경제성이 뛰어나 국가적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WHO는 전통의학을 활성화하는 것이 의료비용의 절감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국가 정책에 전통의학이 포함이 되는 나라를 현재 전체 회원국 191개국 중 25개국, 13%에서 2005년까지 25%로 끌어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 정도다.

서양의학이 한계를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미래 의학을 주도하려면 한의학을 적극 육성할 책임이 국립대에 있으며, 그중 서울대의 책임이 크다.

넷째,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한의학도 기초가 튼튼해야 임상도 발전한다. 그러나 실적을 중시하는 사학에서는 기초학의 육성보다는 임상적 결과만을 중시한 나머지 기초학의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서울대는 국립대 중에서도 정부지원을 가장 많이 받을 뿐만 아니라 순수연구의 가치를 중시하므로 학문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서울대는 우리나라 학문생산의 상위에 있으므로 서울대에 한의대를 설립하면 이후 생길 지방 국립대 한의대의 발전모델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 거꾸로 지방 국립대부터 설립되면 학문적 틀과 모델의 형성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

여섯째, 학문의 식민성을 극복해야 된다는 점이다. 한의학은 조선의 주류의학이자 우리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온 의학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말 서양의학이 유입되어 일제를 거치면서 주류의학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해방이후에는 일제를 청산하지 않은 채 미 군정이 서울대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한의학은 거듭 배제됐다. 대한민국 정부 탄생 이후에도 한의학은 주류의학의 반열에서 배제된 채 보조의학, 보완의학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서울대한의대 설립은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전도된 우리의학의 정통성을 복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통성은 차치하더라도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려면 국립 서울대에서부터 한의학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원화’는 억지 주장

일곱째, 국학과 동양 관련 학문과의 형평성이 고려돼야 한다. 의료가 일원화돼야 한다는 이유로 한의대가 안된다면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고고미술사학과도 일원화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림그리는 것이 하나라면 동양화과와 서양화과로 나눌 필요가 없다. 철학과도 동양철학과와 철학과로 나뉘는 이유는 또 뭔가? 성악과 기악과 작곡과 외에 국악과가 설치된 것도 마찬가지다. 학과를 나누는 이유는 학문의 바탕을 이루는 철학과 원리가 다르거나 일정한 수요 내지 경제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전통의학 육성시켜 21세기 세계의학을 제패하겠다는 중국정부의 원대한 포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어느 대학에 어느 학과는 되고 어느 학과는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주장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양의계와 서울 의대의 주장에는 논리적으로 정합적이지 않은 측면이 많다. 그런데도 서울대 한의대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혹시 논리를 떠나 주장하는 당사자가 소속집단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논리만 양산되는 것이고,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게 세상의 이치다. 미래 한국의 발전과 세계 인류의 건강증진을 염원하는 의료인이라면 생각을 바꿔 서울대 한의대 설립에 대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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