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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의 이중적 성격
2018년 10월 12일 () 05:51:04 김나희 mjmedi@mjmedi.com

건강한 임산부에게 출산은 대체로 안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산이 쉬운 건 아니다.

한 축구선수가 아내에게 신이 주신 해산의 고통을 피하지 말자며 무통주사를 거부하자고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최근 논란이 되었다. 한의사로서, 모유수유와 자연출산을 지지하는 IBCLC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짚어보려 한다.

우선 모유수유 지지 운동이 태동하던 배경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동의도 구하지 않고 전신마취를 하여 임신부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남성 산부인과 의사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겸자를 이용해 아기를 끄집어내는 출산 문화가 있었다. 분유 회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모유는 더럽고 영양이 부족하며 미개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었다. 또한 모유수유 확립의 핵심적인 시기인 출산 직후에 무료로 분유 샘플을 제공해 수유를 방해하는 마케팅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여성들이 내면의 힘을 회복하여 여성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던 자연 출산과 모유수유의 전통을 재점유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IBCLC 같은 모유수유 관련 전문가 그룹도 이런 움직임 속에서 탄생했다. 여성의 힘과 지혜의 수호자들은 과거에 (말 그대로 마녀사냥을 당하던) 마녀, 산파 등의 모습을 띠고 있었는데, 현대의 IBCLC는 이들과 확연히 다른 차별점을 가진다. 바로 근거에 기반한 조언과 처방을 한다는 것이다.

 

경막외마취는 상당히 안전하지만 난산과 모유수유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근거를 토대로 경막외마취를 살펴봤을 때, 출산 마취제의 종류와 용량이 계속 개선되어온 결과 지금 쓰이는 경막외마취(무통분만)는 상당히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개선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위에 나온 여성들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막외마취는 분만의 진행을 느리게 하고 난산 위험을 높인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궁수축에 맞추어 힘을 주어야 아기가 잘 밀려나오는데, 경막외마취에서는 산모가 자연스럽게 힘을 주기가 어렵고 아기도 스스로 몸을 비틀어 자세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분만2기 진행 시간이 2배 이상 늘어나고, 겸자 사용은 4배, 제왕절개는 2~3배 늘어나며 또 모유수유 성공률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종종 생략된다. 연구에 따르면 약 절반의 산모들은 사전에 이런 설명을 듣지 못했으며, 경막외마취를 받았던 산모들 중의 절반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시술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조사되었다. 적어도 경막외마취의 위험성과 단점을 명확히 설명하고 산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진통을 줄이기 위한 호흡법이나 마사지, 침 치료 등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임신, 출산, 산후조리의 전 과정에서 당사자인 임산부의 경험과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막외마취의 위험성에 대한 근거를 확보했으니 임산부들에게 무통분만을 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설득하러 나선다면 또다른 실수를 하는 셈이 된다. 경막외마취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임산부들이 정보에 기반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취 없이 출산했고 그 선택에 매우 만족하지만, 진통이 최고조일 때 ‘아, 무통분만을 이래서 선택하는구나. 무통분만을 선택하는 마음을 알겠다.’라고 느꼈던 순간을 기억한다. 진통은 정말 만만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임산부는 잘 겪어내지만, 그럼에도 출산이 일생일대의 난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산 후에도 출산 과정의 후유증을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출산 전후의 시기에 충분한 휴식, 영양, 정서적 지지, 의학적 검진이 필요하다.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산후조리가 무슨 필요가 있냐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주로 남성 화자가 많다.) “우리 어무니는 아기 여럿 낳으면서 산후조리 한 번도 안 하시고도 불만 없이 잘 사셨다. 아기 낳고 며칠 뒤부터 밭일도 하셨다.” 과연 그럴까?

 

출산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염불이 빠진다'는 표현이 있다. 자궁이 질 밖으로 빠져나온 자궁하수(자궁탈)를 가리키는 말이다. 출산 후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쭈그린 자세로 일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 복압이 올라가는 것이 자궁하수의 주요 원인이다. 내치핵이 빠지는 치질을 '미주알이 빠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역시 출산 후 많이 생긴다. '염불이 빠진다, 미주알이 빠진다'처럼 어떤 상황이 일상어로 자리잡은 것은 그만큼 흔히 일어난다는 뜻이다. 자궁탈이 생긴 여성들은 삶의 질이 극도로 낮아지는 것은 물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남편에게서도 냉대를 받게 되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더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식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자궁탈로 고생하며 사는 것을 까맣게 모르기도 한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여성노인 환자가 있다. 40년 전 막내를 낳으면서 질벽이 손상되어 질(아기 나오는 길)과 직장(대변 나오는 길)이 합쳐져 대변이 질로 나오게 되었으나, 시부모가 돈 아까우니 수술하지 말라고 했다. 그 때부터 40년간 직장질루(rectovaginal fistula)를 자식들에게도 숨기고 살아왔던 것이다. 평생 아프다는 말도 꾹 참으면서 살아서, 자식들은 '우리 어머니는 원래 그런 분' '우리 어머니는 말랐지만 강단이 있는 분'이라고 행복한 오해를 하고 살고 있었다. 진찰 과정에서 직장질루가 발견되지 않은 채 돌아가셨다면, ‘자식 대여섯 낳으며 산후 조리 한 번도 안 해도 건강하게 잘 사셨다’는 착각은 그 분의 집안에서 영원히 지속되었을 것이다.

 

출산의 복합적인 성격을 이해하고 일대일 맞춤으로 최선의 조언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 출산은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건강한 임산부와 건강한 만삭아에게 마취, 회음절개, 관장 등의 의료적 개입이 필요하지 않으며, 의료적 개입이 없을수록 더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고 예후가 좋다. 출산은 대부분의 여성이 건강하게 통과하는 여정임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편한 여정은 아니며 일부 여성은 심각한 삶의 위기를 겪는다. IBCLC는 이 시기에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최선의 조언을 하기 위해 특화된 직능이며, 이 때 무엇보다 당사자 여성의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 근거에 기반해 충분한 설명을 하되, 임산부가 본인의 삶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그 결정을 존중하고 그 조건에 가장 알맞는 내용을 다시 조언한다. 예를 들어 경막외마취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고지한 뒤에도 여전히 경막외마취를 원한다면 그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출산 직후에 아기와 즉시 피부 대 피부 접촉을 하고 첫 모유수유를 시도하되 아기가 처지거나 보채더라도 경막외마취의 영향 때문일 수 있으니 너무 놀라거나 이상하게 보지 않도록 미리 안심시키는 조언을 해준다.

수유와 육아, 산후조리 과정에서의 개입과 조언도 마찬가지로 임산부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원칙적으로는 모유수유가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지만, 충분한 설명을 듣고 난 후에도 엄마가 여전히 단유를 원한다면 안전하고 편안한 단유 방법에 대해 알려주어야 한다.

 

김나희 /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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