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 회장 선거제도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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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협 회장 선거제도 변천사
  • 승인 2004.03.0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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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도입은 시기상조’ 분위기
배수공천제 선호 정서 뚜렷 … 입후보제 개선해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가 회원의 참여에 의한 직선회장을 선출하면서 한의계에도 직선 실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회장 정경진)는 지난 1월 개최한 공청회를 바탕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때 직선제 찬성률은 55.8%에 이르러 한의계의 직선제 도입 가능성에 청신호로 작용했다.

그런 반면 부정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명 신중론이다. 이들 신중론자들은 당위적으로 직선제가 바람직하지만 한의계는 아직 직선제를 실시할 토양이 양방 의약계와 현격히 다를 뿐만 아니라 제도 탄생의 배경도 차이가 있다면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선거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의협의 선거제도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의 판단을 돕고자 한다. 자료는 한의협 40년사와 본지 기사를 참고했다.

■ 전형위원 선출제에서 배수공천제로

한의협의 회장 선출방식의 기원은 1952년 12월 10일 경남 부산시 토성동 동의제약사에서 열린 대한한의사회 창립행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협회 창립총회에는 60여명의 한의사와 내빈이 참석하였다. 당시 임원은 役員이라 불렀는데 銓衡委員의 지명에 의해 선임되었다. 이렇게 해서 김영훈씨가 임기 2년의 회장에 선임되었다.

2대 회장은 전형위원이 3명의 회장후보자를 공천하고 이를 투표에 붙여 선출했다. 전형위원수는 약간식 변동했지만 전형위원에 의한 선임방식은 5대 정경모 회장시대까지 이어졌다. 다만 정경모회장은 처음으로 대의원총회에서 선출되었다.

그러다가 6대 김정제 회장은 전형위원의 공천이나 입후보자 없이 대의원들의 자유토표에 의해 선출하였다. 이른바 배수공천제에 의한 무기명투표방식이다. 배수공천에 의한 회장선출방식은 12대 박승구 회장 선출때까지 적용되었다.

그러나 11대 회장이던 이범성 회장 재임시인 1972년 3월 입후보제방식으로 정관이 개정되어 보사부장관의 승인을 받게 된다.

한의협 40년사에 따르면 “보사부장관으로부터 인가된 개정정관의 내용은 임원의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고(감사는 그대로 3년), 회장선출시 입후보제를 채택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입후보제 도입의 취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자세한 배경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정작 13대 회장 선거에서는 입후보자가 없어 배수공천으로 한요욱 씨를 선출했다. 입후보제에 의한 첫 회장은 14대 회장선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현됐다. 이 당시 3팀이 정·부회장이 출마하여 오승환 씨가 회장에 당선되었다.

1978년 3월 15일 자동차보험회관에서 거행된 제23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의 임원선거방식은 배수공천에 의한 무기명투표로 환원되었다.

입후보제에서 오는 과열분위기가 협회친목을 해친다는 이유로 오승환 전임회장 재임시 정관시행세칙을 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배수공천으로 이금준 씨가 당선되었다. 배수공천제에 의한 선거방식은 이때부터 27대 허창회 회장 선출 당시까지 이어진다.

■ 입후보자 없는 입후보제

1996년 3월 정관시행세칙 제3조(회장 및 수석부회장선거)를 개정해 ‘회장 및 수석부회장은 공동입후보하여 대의원총회에서 무기명비밀투표로 선출한다’로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한의협 선거제도는 다시 입후보제로 전환된다.

그러나 입후보제는 부활벽두부터 시련에 부딪혔다. 96년 29대 회장 선거에서는 입후보자가 없어 구두호천으로 5명을 선정하여 2차전에서 회장을 선출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입후보제에 의한 명실상부한 선거는 30대 회장선거에 와서다. 3팀이 등록하여 선거유세를 거쳐 회장을 선출했기 때문이다. 이후 치러진 31대와 32대 회장선거는 단일후보가 등록해 선거운동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대의원총회에서 찬반투표로 선출하고, 33대와 34대는 입후보자가 없어 몇가지 방법을 모색한 끝에 배수공천방식으로 회장을 선출하게 됐다. <도표 참조>

입후보제 선거방식이 정착하지 못하는 사이 대의원의 절반이 넘는 120명이 입후보제에서 배수공천제로 환원하자는 서명을 하여 입후보제를 위협했다. 이때가 97년 3월의 일이다.

의안상정은 되지 않았지만 이 당시의 환원을 둘러싼 논란은 직선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에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이때 서명 대의원들은 “입후보제를 채택한 결과 1개월 가까이 회무공백이 생기고, 각 지부를 순회하는 선거유세는 일선 회원의 의견수렴보다 회세의 분열을 초래하였으므로 직능 중심의 한의협 특성상 배수공천제가 적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입후보제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배수공천제는 협회발전의 저해요인이었던 파벌주의, 로비주의, 폐쇄주의를 재현시킬 소지가 크다”면서 정관 시행세칙 개정에 반대했다. 이들은 또 “입후보제를 시행해도 충분히 회무공백과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직선제 도입을 추진하려면 한의계 정서와 현실에 비추어 입후보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의협과 약사회가 직선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의도를 정밀하게 규명할 때 한의계의 회장선출방식 논의가 보다 현실성있게 이루어질 것이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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