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행동하는 양심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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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행동하는 양심의 시인
  • 승인 2023.07.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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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mjmedi.com


도서비평┃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전국적으로 50여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폭우 동반 장마가 막바지에 이른 느낌입니다. 천재지변으로만 여기기엔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아 다시금 국가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곱씹은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정부의 안이한 대처와 졸속 해명에 짜증 지수가 치솟던 중, 우연찮게 TV에서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이 질질 끌려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절망·야만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 온몸으로 맞서는 송경동 시인이지요. 책이 손에 잘 잡히지 않으니 가벼운 시집이나 읽겠다는 얄팍하고 얍삽한 생각으로 집어 들었다가, 내용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에 큰 응어리를 만든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혼자서만 앓기 괴로워 고통분담 차원에서 소개합니다.

송경동 지음, 창비 펴냄

지은이의 시집을 구독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에는 문외한일 뿐더러 장르 또한 노동시·민중시가 대부분이기에 제 취향으로는 선뜻 집혀지지 않았거든요. 파편적으로 접했던 「돈」·「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참, 좆같은 풍경」등 몇몇 작품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언젠가 신문 지면에 실린 미당 서정주 문학상 수상 거부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SNS에 올린 그의 일갈 - “친일 부역과 5·18 광주학살과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 그 군부정권에 부역했던 이를 도리어 기리는 상 자체가 부적절하고 그 말미에라도 내 이름을 넣을 수는 없다” - 에 통쾌해 하며, 이후 시인의 이름 석 자를 가슴 속에 고이 새겨 두었지요. 노벨상을 손사래 친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를 떠올리며….

시집은 5부로 나뉜 50여 수 넘는 시와 문학평론가 김명환 교수님의 해설, 그리고 시인의 말 등으로 구성됩니다. 무고한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시를 모은 5부를 제외하고는 각 부에 소제목이 붙어 있지 않아 어떤 기준으로 나뉘었는지 모르겠는데, 뭐 순서 상관없이 책장을 펼쳐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읽어도 무방할 듯합니다. 읽노라면 거의 모든 작품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현장이 섬뜩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외면하고픈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특히 “∼ 우리는 쓸겠습니다 당신은 닦으십시오 부디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 “∼ 위만 나쁘다고 위만 바뀌면 된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도 바뀌어야 할 게 많아요 그렇게 내가 비로소 나로부터 변할 때 그때가 진짜 혁명이니까요”「우리 안의 폴리스라인」, ∼ 생각해보니 조명이 집중된 자리나 특출하고 빼어난 것들만 좇아 살아온 내 뒤안길이 모두 그렇게 가벼웠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저급한 인간인지를 내가 얼마나 얄팍하고 얍삽한 인간인지를“「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 ”∼ 밥 한공기 덜어준 이웃들이 함께 이룬 경이로운 삶의 여정 사랑과 연대라는 가장 오래된 백신“「가장 오래된 백신」 등에서 가슴앓이가 많았는데, 메타인지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공감하겠지요.

이제 고작 1년 지났으니 앞으로도 4년을 더 견뎌야 한다는 사실에 새삼 답답해지지만, 이번 호우 동반 장마마냥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건 틀림없습니다. 송경동 시인처럼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갈 자신도 역량도 없다면, 최소한 그의 눈에 부끄럽게 비추지는 않도록 살아냅시다.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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