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32) 완벽하지 않아도 완전할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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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32) 완벽하지 않아도 완전할지 몰라
  • 승인 2023.09.0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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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퇴근길, 가수 윤도현씨의 암 투병 기사를 보다가 문득 그의 곡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듣고 싶어졌다. 워낙 명곡이라 여러 가수의 버전이 있었는데 그 영상들 중 내 선택은 최백호씨였다. 영상 속에서 그는 들풀 가득한 야외 벤치에 앉아 힘 들이지 않고 최백호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음정이나 박자가 정확하진 않았지만 그의 노래에는 다른 가수들과 다른 깊은 울림이 있었다.

최백호씨는 화려한 기교나 정확한 음정, 박자를 지키며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지만 70이 넘은 지금까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훌륭한 가수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음정, 박자, 기교와는 조금 떨어져있지만 우리가 최백호씨의 노래를 사랑하듯, 직접 경험하는 훌륭함은 생각하던 것과 다를 때가 많다.

학창시절 의료봉사에서도 그랬다. 한의원에 오래 다녀도 낫지 않던 환자가 본과4학년 혹은 그보다 낮은 학년 학생의 치료로 확 좋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보편적 기준으로 생각하면 한의사가 치료해도 낫지 않았던 병을 학생이 어떻게 치료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학생 명의(名醫)의 일도쾌차는 꽤 자주 목격됐다.

일도쾌차로 좋아진 환자에게는 임상경험이 풍부한 의사의 치료기술이 아니라 자기가 고생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줄 하얀 가운 입은 누군가가 더 필요했을지 모른다. ‘내가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아왔어. 그러다보니 내 몸도 이렇게 된 거야. 지금의 아픔과 고통이 고생스런 인생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아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이 순수한 학생들의 경청과 공감 덕분에 풀어지며 미완(未完)의 치료에도 확연히 좋아진 것일 수 있다. 이렇게 때로는 최백호씨의 노래나 학생들의 치료처럼 약간의 부족함이 완벽함보다 더 완벽할 때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여러 가지 부족함을 느낀다. 때로는 돈이, 때로는 시간이, 나이가 들어서는 건강이 부족해지기 쉽다. 삶 속에서 부족하다는 느낌은 영원히 채우지 못할 상수(常數)이자 동반자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부족함에 대한 갈증과 결핍감은 유독 심하다. 그만큼 욕심과 욕망이 강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지금 이루어 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들이 항상 ‘부족하다, 모자라다.’며 더 달려간다. 아무리 달려가도 닿을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다가 인생을 탓하기도 하고, 자기의 무능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런데 닿고자 하는 완벽한 그곳은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일 수 있다. 오히려 무엇인가 부족하고 모자란 지금이 가장 완벽한 상태 일지 모른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순간이 인생에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이라면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은 <지금>이 가장 완전한 시간 아닐까.

지금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그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 인연 그리고 장소는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었다면 내가 선택하지 않았거나, 혹은 만나지 못했을 것들이다. 오늘 그리고 지금 우연히 만나는 모든 것들이 완벽(完璧)할 순 없어도 완전(完全)할 수 있다. 계획대로 안 되는 일, 뜻밖에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짜증나고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그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 기회나 인연 혹은 미래를 위해 배워둘 것들이 분명히 있다. 지금 잠시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미래에 요긴하게 쓰일 아이템을 갖추어 주려는 신의 속셈이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그 속셈을 알기 어렵지만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스스로 참 초라해 보이는 그럴 때 살짝 다르게 생각해보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보인다. 최백호씨의 노래처럼 세상의 기준과 다른 훌륭함이 내 안에 무르익는 중일 수도 있고, 부족한 모습의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곳이 나를 당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의 삶이 원하던 모습이 아니거나 남들보다 뒤쳐진 것 같더라도 우리에겐 각자 서로 다른 인생이 있다. 그 인생들끼리는 비교할 수도 경쟁할 수도 없다. 서로 다른 인생 여정에서 꼭 배워야 할 것과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모여서 각자의 삶이 될 뿐이다. 그래서 모자라고 부족한 것 같아도 필요한 과정을 빠짐없이 거쳐 온 인생은 나름대로 완전하다. 이렇게 소중한 인생을 아끼고 보듬다 보면 세상이 알아주는 순간과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매 순간 완전했던 인생은 비로소 그때 완벽해진다.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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