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집중력 부족을 야기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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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집중력 부족을 야기하는 사회
  • 승인 2023.09.0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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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희

서주희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도둑맞은 집중력

최근 들어 찾아오는 성인 환자들이 ADHD이거나 ADHD 경향이 많아진 듯한 느낌이 들어 나만의 착각인가 아니면 사회적인 변화에 따른 현상일까 하고 고민을 한동안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환자들과 같이 ADHD와 관련된 항목들을 조사하면서 나 자신의 행동과 정신적 흐름에 대해서도 좀 더 인식하게 되면서 나의 집중력도 그다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발견하였다.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펴냄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펴냄

머리 속엔 해야 할 일 목록이 늘 주르륵 나열되어 있어 여러 개의 컴퓨터 화면의 창이 겹쳐 있는 듯 구체적인 리스트가 계속 돌아가며 바뀌는 듯하고, 뭐 하나 잠시 앉아서 하려다보면 핸드폰에서 울려대는 알람음에 ‘반응하지 말고 이 일을 다 끝낸 다음에 확인하자’라는 좀 전에 마음의 다짐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알람에 거의 반사적으로 바로 고개가 돌아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책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이 약화된 집중력의 원인을 아주 오래전 어릴 때 책에 몰입해서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있었는데 밥 먹으라고 하는데 왜 안 듣냐고 갑자기 큰 소리로 호통을 쳐대던 엄마 탓이라고 나름 심리적인 트라우마 운운하면서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지만, 한 번에 한 챕터 읽기도 힘든 지경이 되니 이건 엄마 탓도 아니요, 내 개인의 빈약한 의지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우연히 이 책의 제목을 보게 되었다.

도둑맞았다고 하니, 이건 누가 빼앗아갔다는 소리인가? 오호라. 떨어진 집중력이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였지만, 챕터를 넘어갈수록 생각보다 깊숙이 침투되어 있고 지금의 현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집중력을 해치고 있는 다양한 요소와 학자들의 주장들이 무겁게 다가왔다.

집중력은 단지 학습 분야에서만 필요한 개념은 아니다. 저자인 요한 하리는 집중력은 모든 인간 성취의 핵심이라고 하였고, 우리의 집중력 저하 문제는 이미 매우 심각하고 더 악화되고 있다고 하였다. 심지어 지금의 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후 위기마저 집중력 저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은이는 사회과학과 정치과학을 전공한 영국 저널리스트로써 집중력 위기를 다루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신경과학자, 사회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등 백명 이상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며 그들의 견해와 중대한 연구사례,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의 경험을 같이 풀어내며 이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다행인 것은, 집중력 위기가 온 것이 최근에 일어난 일인 만큼 지금부터라도 인류가 연대의식을 가지고 이것에 대해 의식하고 같이 대응하며 강력하게 능동적으로 싸운다면 도둑맞았던 집중력을 되찾아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훔쳐갔다는 말인가? 개인의 의지 박약으로 잃어버린 게 아니라면....

저자는 집중력 악화를 유발하는 요소를 ‘속도에 대한 강박’, ‘잦은 멀티태스킹’, ‘수면 부족’, ‘긴 글을 읽는 능력의 부족’, ‘감시 자본주의’, ‘몰입의 손상’, ‘테크 기업’, ‘만성적 각성상태’, ‘형편없는 식단’, ‘놀이의 부족’ 등 12가지 요소를 꼽아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당연히 테크놀로지와 관련이 있었지만 먹는 음식에서부터 일하는 방식, 학교가 운영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사회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이렇게 침투하고 있었기에 집중력이 무너지게 되었구나라는 걸 알게 되니 내 탓만은 아니라는 안도감보다는 몰랐던 매우 크고 강한 힘을 가진 도둑들을 알게 되어 경계와 자기 보호에 대한 다짐으로 싸움 본능에 불을 지피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싸움이 단기적으로 개인의 차원에서만 끝날 수는 없고, 집단적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해야 한다. 방어와 공격이라는 견지에서 보자면 우리 자신과 특히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박문호 박사가 ‘목표에서 눈을 떼지마라 그러다보면 장애물이 사라진다’라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저자인 요한 하리는 주의력의 4번째 단계로 스테디움 라이트(stadium light)를 말하였다. 이는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공동의 목표를 구상하고 이뤄내는 능력이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목표 달성도 있겠지만, 집단의 차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양극화 문제나 기후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 연대의식을 가지고 공동의 집중력을 모아 이뤄가도록 함께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 장애물이 사라지는, 우리 후손들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있지 않을까?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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