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의학과 인체에 관한 소고-여덟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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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의학과 인체에 관한 소고-여덟 번째 이야기-
  • 승인 2023.10.20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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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우

이준우

mjmedi@mjmedi.com


현대적 언어로 풀어 쓴 한의학이야기(63)
이준우
탑마을경희한의원

水升火降

의학의 발달은 대체로 전쟁이 많았던 시기를 거치면서 이루어진다. 서양의학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히 발달하였듯이, 한의학 역시 마찬가지로 전쟁을 거치면서 발달하였다. 한의학의 기초이론을 정립한 황제내경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편찬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허준의 동의보감 역시 임진왜란이 끝난 시점에 저술되었다. 결국 의학이란 사체의 해부를 통해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水升火降이라는 용어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우선 체순환(systemic circulation)의 다른 부분은 전부다 생략하고 심장과 콩팥 그리고 동맥과 정맥만 그려보고자 한다(그림 1). 그러면 심장의 火는 동맥을 타고 내려가서 콩팥을 따뜻하게 해줄 것이고 콩팥의 水는 정맥을 타고 올라가서 심장을 식혀줄 것이다. 필자는 심장의 火는 콩팥으로 내려가고 콩팥의 水는 심장으로 올라가는 해부학적인 모습을 보고 고대인들은 水升火降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림1. 체순환의 단순모형과 수승화강

똑같은 혈액임에도 불구하고 심장에서 나오는 혈액은 火라고 표현하고 콩팥에서 올라가는 혈액을 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일리가 있을까? 대답은 예스이다. 동맥혈과 정맥혈은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첫째 동맥혈은 산소를 가득 머금은 선홍색을 띠고 있고 정맥혈은 산소가 빠져나간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둘째 동맥은 탄력성이 크고 동맥혈이 지나가는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동맥의 운동성과 마찰력 때문에 동맥혈 주변에서 열생산이 많이 이루어질 것이다. 반면에 정맥은 유순도가 커서 잘 늘어나고 정맥혈이 지나가는 속도도 느리기 때문에 정맥의 운동성과 마찰력이 크지 않아서 정맥혈 주변에서는 열생산이 적을 것이다. 셋째 혈액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어 비열이 크고 냉각기능 역시 탁월하다. 정맥혈은 심장으로 돌아가서 심장의 열기를 식혀줄 것이며, 동맥혈은 심장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담아서 다른 장기로 전달해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동맥혈을 火라고 표현하고 정맥혈을 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승화강과 경락의 승강

水升하고 火降하는데 대체 왜 경락은 음경락에서 熱, 風, 濕이 상행하고 양경락에서 寒, 火, 燥가 하행할까? 水升火降이라는 표현대로라면 寒이 상승하고 熱이 내려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물탱크와 온수보일러를 헛갈려서 생긴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반복해서 언급하지만 경락현상이란 장부의 활동으로 인해서 생긴 결과이다. 그리고 水升火降이란 심장과 콩팥이라는 장부의 활동이며 온수보일러에 해당하는 개념이지 경락현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체의 온수보일러 즉 혈액순환계에서는 水升火降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로 인한 물탱크에서 일어나는 물의 순환은 대류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따뜻한 물이 상승하고 차가운 물은 하강하게 된다. 따뜻한 물이 상승하는 경로가 음경락이 상행하는 노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차가운 물이 하강하는 경로가 양경락이 하강하는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체에 생기는 네 가지 기후

마지막 정리를 위해서 인체에 생기는 네 가지 기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온수보일러 위아래에 두 가지 종류의 기후가 생기게 되고, 물탱크의 전후에 두 가지 종류의 기후가 생기게 되면서 인체에는 총 네 가지 종류의 기후가 생기게 된다.

온수 보일러의 횡격막 윗부분은 고온건조하고 고기압인 여름의 사막기후라고 이야기 하였으며, 횡격막 아래 부분은 한랭습윤하고 저기압인 겨우내 비가 오는 캐나다 밴쿠버 기후라고 하였다. 이를 냉대습윤기후라고 이야기 한다.

양경락과 음경락의 주 노선들이 흐르는 곳은 온수보일러 부분이 아니라 물탱크 부분에 해당한다. 인체 전면에는 음경락이 흐르고 熱, 風, 濕 세 가지 기운이 상승하고, 이는 적도 부분의 고온다습한 열대우림기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인체 후면에는 양경락이 흐르고 寒, 火, 燥 세 가지 기운이 하강하고, 이는 한랭건조한 극지방의 기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차고 건조한 툰드라 기후를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네 가지 기후가 나타나는 상황들

그러면 이런 인체의 네 가지 기후는 언제 생기게 될까? 이 역시도 심박출량의 조절기전과 상관이 있기 때문에 한의학이야기 59편에서처럼 자율신경이 적극 관여하는 상황과 그렇지 않는 상황으로 나눠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두 가지가 엄밀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엄밀하게 나뉜다고 가정하고 설명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평상시에는 신진대사가 왕성하면 열생산이 많아지고 혈액순환도 활발해지면서 인체는 고온, 다습, 저기압인 환경이 조성될 것이고, 반대로 신진대사가 적어지면 열생산이 적어지고 혈액순환도 줄어들면서 인체는 한랭, 건조, 고기압이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기와 노인이다. 아기 때는 고온, 다습, 저기압이라면 노인이 되면서 한랭, 건조, 고기압의 환경이 된다.

자율신경이 관여하면 조금 양상이 달라진다. 우선 위기 상황이 되어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인체는 上盛下虛가 되기 때문에 횡격막 위의 장기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인체에는 고온, 건조, 고기압의 환경이 조성된다. 원래는 열생산이 많아지면 열발산 역시 많아져야 하는데 교감신경이 흥분하면서 말초혈관이 수축하면서 열발산이 억제되고 높은 압력이 형성된다. 교감신경이 흥분할 경우 호흡도 빨라지면서 수분증발이 많아지기 때문에 인체는 상대적으로 건조해진다. 그러다가 위기 상황이 지나가고 교감신경이 억제가 되고 부교감신경이 흥분하게 되면 정반대 현상이 펼쳐지게 된다. 긴박했던 상황이 해소가 되면서 열생산도 줄어들고 말초혈관 역시 이완이 되면서 열발산이 증가하게 되어 인체는 평소 상태로 회복된다.

인체에서 한랭, 습윤, 저기압인 상황은 빈번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교감신경이 억제가 되고 부교감신경이 항진이 되면 열생산이 감소하고 열발산이 증가하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체는 체온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정상체온 이하로 내려가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을 수가 없다. 즉 ‘열생산 감소 + 열발산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태를 오래 방치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상황은 지속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위장기능은 활발해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열생산까지 정상체온 이하로 억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심박출량이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말초혈관이 확장하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한데 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며, 알코올로 인한 저체온증이나 미주신경실신과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부교감신경의 활성이 지속되면서 에너지 저장을 많이 해서 비만이 되는 경우도 부교감신경의 활성만 보면 한랭, 습윤, 저기압인 환경이 조성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만으로 인해 초기에는 혈류량이 증가하고 후기에는 말초저항이 커지는 등 복잡한 과정들을 거치기 때문에 한랭, 습윤, 저기압이라는 표현보다는 吸聚之氣가 呼散之氣에 비해서 과도하다는 표현이 훨씬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즉 체중의 증가와 감소는 寒熱보다는 吸聚와 呼散이라는 기전으로 설명되어지는 것이 훨씬 유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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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의 내용을 검토해준 동의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 권찬영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준 군자출판사 김도성 차장님, 유학영 과장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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