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 비 오는 날 마주한 두 형사의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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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비 오는 날 마주한 두 형사의 대비
  • 승인 2023.11.1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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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김재범

mjmedi@mjmedi.com


영화읽기┃살인의 추억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보려고 했던 건 지난 이춘재라는 인물의 조명이 있을 당시다. 영구 미제로 남을 것 같던 그 사건이 해결되고, 통쾌함보다는 씁쓸함, 씁쓸함보다는 시대에 잊혀진 안타까운 영혼들에 대한 허무감으로 새삼 화성살인사건, 이춘재의 일대기를 읽어보았었다. 지난 사건을 괜히 반추해보듯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보려했는데, 그냥 무심코 보아 넘겼던 대사들이 이젠 범죄자의 얼굴도 알게 되니, 그냥 듣고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 때는 영화보기를 포기했었다.

감독: 봉준호출연: 송강호, 김상경 등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김상경 등

이번에 다시 살인의 추억을 재도전했다. 익히 알듯 살인의 추억은 감에 의존한 재래식 방식에 의해 사건을 해결해보려는 송강호와 합리적인 추론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려는 김상경의 두 인물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러다가 우여곡절을 거쳐 어떤 한 인물에게로 두 사람의 주의가 집중된다.

그를 실제로 찾아가 만나기도 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체포할 수는 없다. 김상경은 죽이려고 총까지 꺼내들지만 송강호가 막는다. 사건 내내 감정적인 대응보다 냉철함을 유지하려던 김상경이 총을 빼들었던 것, 누가 되든 범인 한명만 잡아 쳐 넣으면 장땡이라는 식으로 일을 해오던 송강호가 김상경을 제지한 것.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둘의 모습은 그렇게 다시 대비된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비 오던 날 잠복초소에 들렸던 여중생아이의 사망일 것이다.

김상경이 범인은 박해일일 것이라고 결론짓고 그를 예의주시하던 날들 중 잠시 그를 놓친사이, 비가 오고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라디오로 나오던 밤새, 마치 범인은(그게 박해일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보란듯이 여중생을 죽였다. 그런 시체가 되어 야산에 널부러져 있는 학생을 보고 산을 걸어 내려오던 김상경의 표정이 난 제일 이 영화를 통틀어 기억에 남는다.

죽음 앞의 무력감, 병이 들어서 앓다가 죽은 것도 아닌 그냥 죽음, 그냥 생과 죽음, 디지털의 0과 1처럼,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지는 것도 아닌 형광등의 켜지고 꺼짐, 유리잔이 금이 가다가 결국 깨진 것도 아닌 떨어져서 깨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 죽음이 그런 것인데 범인은 손쉽게 행했다는 것, 그걸 고민했다면, 그걸 고려했다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아니 그런 중대한 일이라 그런 일을 본인 손으로 해냈다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꼈을까....늘 하는 생각이지만 본인을 방어하는 과정 중에 어쩔 수 없는 살인을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똑같이 죽음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호도 필요 없다.

이런 찜찜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내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소재를 영화화시킨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어두움을 굳이 자신의 시간을 들여 보려고 할까? 봉준호 감독은 그런 부분을 찜찜하게는 하여도 부담되지는 않게, 술에 취해가는 중에 이미 몸이 술에 완전히 젖어감을 인지하였더라도 술이 자꾸 더 마시고 싶어지는 기분처럼, 그렇게 영화를 꾸려가는 사람 같다.

아마 이 영화를 다시 보려고 했던 당시, 이춘재가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질 때쯤에는 영화 속 대사들과 웃음을 이끌어내는 듯한 장면들 때문에 오히려 더 보기 싫어졌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그런 장면들과 대사들 때문에 이런 우울하고 보기 힘든 내용의 영화를 끝까지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구성되고 형성되고 변형되는가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전 생을 통틀어 해야 할 일이다. 어렵다. 나도 같은 한명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어도, 한 명 한 명의 우주와도 같은 개별성을 생각하면 알다가도 보편화시켜 이해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게으르고 건방진 일인가 싶기도 하다. 인간의 다양한 면을 보게 하는 미디어는 스승이다. 그런 얼마간의 시간을 구성해내는 생산자들은 얼마나 다양한 부분들을 고려하고 있을지, 고맙기도 경외롭기도 하다.

 

김재범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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