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세계여행 다이어리] #1. 동의보감 강의를 들은 프랑스 침구사가 운 사연 - Lill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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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세계여행 다이어리] #1. 동의보감 강의를 들은 프랑스 침구사가 운 사연 - Lille, France
  • 승인 2023.11.22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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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미

송찬미

mjmedi@mjmedi.com


◇강의 중인 원광대학교 강연석 교수

본과 4학년 병원 실습을 모두 마친 다음 날, 프랑스 침구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동의보감 세미나 참관을 위해 프랑스로 갔다. 실습 기간 중 원광대학교 한의학국제협력교육센터(WKCICE, Center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 & Education, 센터장 강연석) 소속으로 통역 업무를 병행하며 얻게 된 기회였다.

세미나는 7월 3일 프랑스 릴에 위치한 Institut de Genech에서 있었다. 원광대학교 강연석 교수님의 de Dongui Bogam à Sasang 4 types of Constitution (동의보감부터 사상 4체질까지) 강의로 진행되었는데, 원불교 파리교당 김신원 교무님의 도인 체조 및 명상법과 김서휘 원장님(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박사수료생, 인천 명가한의원장)의 침 시술 시연으로 구성되어 하루 종일 진행됐다. 이는 원광대학교와 FLETC(Faculté Libre d'Energétique Traditionnelle Chinoise, 사립중의학교육기관) 간 학술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세미나에 참가한 일부 프랑스 침구사들은 이후 원광대학교에 방문하여 한의학 교육을 받는다.

◇명상법 수업 중인 원불교 파리교당 김신원 교무

FLETC(플렉)은 일종의 프랑스 사립 침술 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침, 약, 추나 등 각 분야에 대한 자격증을 각각 취득해야 관련된 치료 행위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 년에 한 번, 프랑스 전역의 침구사들이 한 데 모여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르는 2주간의 세미나가 진행된다. 일반적인 대학교라기보단 야간 대학이나 학원에 가깝기 때문에 학생들의 나이와 배경이 굉장히 다양하고, 대부분 생업을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다. 실제로 전업주부부터 마트 캐셔, 스탠드 업 코미디언, 환경미화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특히 친해진 친구가 있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나이가 5살 많았다. 모로코 부자 남자친구와 세계여행으로 20대를 다 보냈는데 헤어지고 나서 정착을 위해 침구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으며 비로소 프랑스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쉬는시간에 옆자리 친구와.

 

강의 중에도 프랑스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표리로 나누는 한의관에 기초했을 때, 인간의 피부를 안으로 볼 것인가 밖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교수님의 질문이 있었다. 그러자 강의실의 거의 모든 학생이 손을 들었다. 한의대 6년 차인 필자가 얼마나 놀랐을지 한의사 선배님들께서는 이해하시리라 생각한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강의실에서는 수 분 간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러다가 이 문제엔 답이 없고 상황에 따라 표리가 바뀔 수 있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수렴되는 듯했다. 그제야 교수님은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실건가요?” 강의실은 한순간에 조용해졌고 모두 고개만 가로저었다.

동의보감은 목차를 통해 인체의 표리를 명확히 구분(내경과 외형)한 책이다. 물론 이 하나의 사례가 동의보감의 모든 가치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의학서로서 동의보감이 가지는 가치를 전달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철학과 논쟁을 사랑하는 프랑스인이 아닌가. 그들이 열띠게 토론한 만큼, 동양의학에 갖고 있었던 어슴푸레한 신비로움이 걷히고 명확한 치료의 관점이 열렸으리라 기대해 본다.

◇토론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한국 기념품을 나눠주는 모습.

열렬한 강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는데 한 프랑스인이 내게 다가왔다. 혹시 명불허전이라는 드라마를 묻길래 봤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드라마를 보며 침구사 공부를 시작했던 것부터 오늘 운명처럼 동의보감 강의를 듣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우는 그녀 주위로 동료들이 다가왔다.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동료 침구사들은 명불허전이 프랑스에서 유명한 드라마이고, 본인들도 오늘 강의를 들으며 그 드라마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해주었다.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프랑스 침구사의 눈물을 떠올렸다.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정확히 헤아릴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한의학에 진심인 마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자국 의료시스템 밖의 학문을 공부하며 가졌을 불안함과 의구심을 생각해 본다. 17세기에 나온 동의보감부터 오늘날 쓰이고 있는 한방의료기기까지 소개한 오늘의 강의가 그간의 물음에 답이 되어 나온 눈물은 아니었을까.

한의학 강의 참관을 위해 14시간을 날아왔지만 아직도 한의학이 갈 길은 멀다고 느낀 세미나였다. 세계 속에서 치료 효과로 그 가치를 입증하고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며 나아갈 한의학의 세계여행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diary’s tip - 외국인 선물 사기 가장 좋은 곳

프랑스 침구사들을 위해 한국적이면서 실용적이며 너무 비싸지도 무겁지도 않은 선물을 찾아야 했다. 이럴 땐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을 적극 추천한다. 천 원짜리 노트부터 3~5만 원대의 고급 오브제까지 품목이 다양하다. 품질도 훌륭하고 다양한 작품이 프린트되어 있다. (https://www.museumshop.or.kr/kor/main.do)

 

송찬미 / 원광대학교 본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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