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가장 뜨거운 온도,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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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가장 뜨거운 온도, 블루
  • 승인 2023.12.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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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김재범

mjmedi@mjmedi.com


영화읽기┃블루 자이언트
감독: 타치카와 유즈루출연: 야마다 유키, 마미야 쇼타로, 오카야마 아마네 등
감독: 타치카와 유즈루
출연: 야마다 유키, 마미야 쇼타로, 오카야마 아마네 등

애니메이션만의 연출을 좋아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매우 진지한 대사와 분위기를 때때로 좋아한다. 나를 위한 노력. 세계 최고가 될꺼야. 전력을 다하면 관객에게 전해질꺼야. 무대 위에서 수십 번 수만 번 죽어야 돼. 와 같은 대사들.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말들을 계속 해서 듣는 것이 영화 내내 이어지던 연주음악 만큼이나 가슴을 뛰게 했다.

주인공들이 10대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이미 20대도 지나오면서 10대의 기분이 꽤 가물해졌지만 어떤 장면들은 여전히 너무 선명하다. 기억해내려면 더 잘 구체적으로 기억해낼 수 있을 것처럼. 어쩌면 지난 몇 년 동안의 기억보다 선명한 것들도 있다. 아직 뇌와 심장도 더 싱싱했을 때이기도 했고 무엇이든 의지도 더 선명했을 때라 그런지.

인간은 전력을 다할 때 정말 아름답다. 전력을 다해야만 원하던 변화를 만들어내고 변화가 누적되고 다져지면 언젠가 수평선을 너머 더 멀리 갈 수 있다. 전력을 다할 대상이 필요하다. 투철한 목표를 가진 인간 특유의 눈빛이 상대방의 망막에 닿으면 뜻이 전해진다. 영화 속 밴드 jass의 3인 구성도 그렇게 이뤄진다. 재즈바에서 보고 꽂힌 피아니스트와의 화장실에서의 조우, 같이 밴드를 하자고, 일단 내 연주 한번 보고 결정하라고 하는 절박한 구애부터 난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초석. 사람 한 명 한 명을 모아가는 서사의 도입부를 좋아한다. 우연과 적극적인 대시, 각각의 니즈를 서로 채울 수 있을 듯한 예감에서의 시작. 재즈밴드는 록밴드처럼 영원하지 않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를 때까지 서로를 발판 삼을 뿐이라는 첫 만남의 대사처럼.

3인구성은 2인구성보다 흥미롭다. 위기에 빠진 한명을 한 친구는 네가 알아서 깨고 부시고 나오라고 하고 한 친구는 이럴 때 돕는 게 친구 아니냐고 하는 장면이라든가. 처음에 실력이 너무 떨어지는 이제 막 드럼을 시작한 친구를 애초에 멤버로 들이려고 하지 않는 친구와 재즈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면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믿는 친구. 그래서 술자리도 둘이서 마시는 자리와 셋의 자리. 넷의 자리는 다 각각 맛이 다르다. 다섯 이상 넘어가면서부터는 그날의 구심점으로 누군가 있게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색소폰을 취미로 불어서 더 몰입감이 좋았다. 아... 눈이 저렇게 내리는날 어두운 밤 공터에서 혼자 롱톤(long tone) 연습이라니.. 공원에 한나절 앉아 악기를 구석구석 손질하는 모습...혼신의 연주를 숨죽여 바라보는 영화 속 사람들처럼 나도 그 중 하나가 되어서 눈물을 주륵 흘릴 때 나도 따라 울었다.

요새 이런저런 준비로 미뤄뒀던 색소폰 연습을 다시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내일 선생님께 연락드려야지. 요새 정말 매일 전력을 다해서 진료 보는데 조금씩 환자들이 그런 마음을 느끼고 표현해주실 때 기분이 정말 좋다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퇴근할 때 쯤 되면 정말 손가락도 마디마디 아프고 녹초가 되는데도 은근히 개운한 맛이 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환자가 감동을 받든 말든 때론 입력해놓은 명령어대로 엄격하게 움직이는 로봇처럼 갈 길을 가듯이 치료한다. 내가 내 몫으로 긍지를 가지고 책임지고 해야 할 부분들이 정확히 이뤄지고 나서 평가는 그 후의 몫이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의 대사 중에도 인기 재즈밴드의 스타일을 의식해서 맞추지 말고 우리 색대로 더 강렬한 소리를 내자는 말처럼. 연주자가 낼 수 있는 음색의 최대 매력도를 뽐낼 수 있도록 나도 진료현장에서 늘 전력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최고의 재즈바에서 주인공을 부르듯이, 그의 주변으로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이듯이. 나도 그런 인력引力을 가질 수 있는 더 무거운 질량質量이 되어야한다. 매일 매일의 전력투구로.

​ps. 아 그리고 영화의 제목이 왜 블루 자이언트냐면 불꽃이 평소보다 더 높은 온도일때 색이 블루라고 한다. 그런 온도의 연주일 때 재즈 최고의 연주자를 블루 자이언트라고 부른다나. 블루스에서 연유한 게 아니었다. 블루가 정말 여러모로 심오한 단어인듯..레드보다 더 뜨거운 블루라니. 매우 낭만적이었다.

 

김재범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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