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전쟁 속에서 인간에게 자유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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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전쟁 속에서 인간에게 자유는 있을까
  • 승인 2024.01.1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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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김재범

mjmedi@mjmedi.com


영화읽기┃뮤직박스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출연: 제시카 랭봇, 아민 뮬러-스탈 등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
출연: 제시카 랭봇, 아민 뮬러-스탈 등

요즘 잠시 세계사에 관심을 두게 되어서, 이런저런 역사 관련한 영화들을 찾아보다가 지식인에서 누군가 이 영화를 추천했다. 뮤직박스라는 생소한 제목, 나치 전범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심리묘사를 그리는 영화라는 면에서 오래된 영화지만 보게 되었다.

역시 옛날 영화들은 대체로 호흡이 긴 장면들이 많다. 긴박감을 주는 방식도 약간 다른것같고.

영화는 헝가리인 아버지가 미국으로 이주해 아들과 딸을 키워내서, 결국 변호사가 된 딸이 어느 날 전범으로 고소당한 아버지를 변호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를 고소한 측의 검사는 아버지의 나치전범업적을 확신하고 딸에게 진실을 바라보자고 호소한다. 그에 반해 딸은 언제까지고 아버지에 대한 고소가 아버지와 동명이인이 행한 잘못에 대한 고소라는 확신으로 일관하며 변호를 한다. 그러다 딸의 확신이 차츰 흔들리는건 피해자와 목격자의 증인이 하나둘 법정에서 나오면서부터다....이후는 스포일러가 될것같아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딸과 아버지의 감정묘사였다. 아버지를 100퍼센트 신뢰하던 딸이 점점 확신을 잃어가는 모습, 나의 아버지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그래야 소송에서 승리할 수 있기도 하고, 나의 아들이 저렇게도 사랑하고 따르는 나의 아버지를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 그러나 그것이 깨져버리고 난 후의 깊은 슬픔과 분노, 나의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딸의 심정 같은 것들. 정말 그럴듯해서 먹먹했다.

내가 기대고 싶었던 아버지가 전범이라니, 그리고 그의 악행으로 수많은 목숨들이 어이없게 죽었다는 걸 맞닥뜨렸을 때, 당혹감, 공허감의 감정. 자식에게, 손주에게만큼은 일반적인 가장이고 싶은 전범인 남자의 욕심? 뻔뻔함이라고 해야할까. 하는 감정을 느꼈다.

전쟁은 누군가 적을 만들어야 성립되고, 누군갈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 전투이기 때문에 잔인해질 수밖에 없다. 잔인해지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 전쟁이다. 하지만 민간인에 대해선 다른 얘기다. 베트남전쟁처럼 수많은 게릴라전투로 민간인과 전투병의 구분이 모호했던 전쟁에서도 민간인 학살은 용서될 수 없는 일인데, 인종의 우열이라는 명제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유대인을 나치가 학살했던 것,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우리나라 민간인들에게 했던 학살, 성노예로 끌려간 수많은 어머님들...다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 까지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하려고 하는 일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면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 또 무시해서도 안 되는 것. 그런 생각을 지니고 실천하려는 의지도 하나도 자유라면 전쟁 속에 전범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은 그런 자유가 억압되어서 그런 행위를 했을까. 본인의 자유의지로 시작했을까. 마약을 하지 않더라도 살인도 자꾸 하다보면 대수롭지 않아지는 것이었을까. 국가라는 스폰서를 뒤에 두고 있어서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일까. 이제 2차 대전의 전범들, 피해자들은 모두 고령 혹은 고인이 되었다. 인간에게 저런 잔인함과 무자비함이 있다는 것을 때론 이런 영화를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누군가에게 가혹할 만큼 잔인하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생존욕구가 강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유행처럼 번지는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난 늘 그다지 유쾌하지 않게 들린다. 어차피 서로 어울려, 서로 돕지 않으면 세상은 잘 굴러갈 수 없는데, 서로가 서로를 등 떠밀고, 경계하는 분위기가 난 너무 어색하고 불편하다. 혼자서만 잘 살 수도 없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보여도 오래 못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다양하지만 서로 행복을 나누고 그 안에서 새로 행복이 피어나는 즐거움이 없다면 잘 산다의 의미에서 반절도 못 갖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재범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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