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인의 근로계약과 면허 취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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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료인의 근로계약과 면허 취소에 관하여
  • 승인 2024.03.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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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규

장덕규

mjmedi@mjmedi.com


장덕규법무법인 반우​​​​​​​파트너변호사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파트너변호사

의료법은 규제에 관한 법령이라 내용도 자주 바뀌고, 내용도 전문적이라 일반 대중들이 그 내용을 잘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며칠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업무개시명령이 무엇이고 면허 취소가 어떻게 되는지를 다 알고 있다. 의대 증원에서 시작된 문제가 의료법상 각종 명령의 효력과 의료인이 의료기관과 맺는 근로계약의 효력 등 법률적 쟁점까지 번져가는 모양새이다. 결국 최종적인 문제는 의료인들의 면허가 유지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착될 것으로 보이는데, 직접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한의사들도 똑같은 법의 적용을 받는 의료인임은 동일하다. 또한 많은 한의사들 역시 고용계약에서의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되기에, 관련 내용에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관련된 법령의 내용을 숙지하고 추후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응할 역량을 갖추어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갈수록 격화되는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속에서, 대형 병원 의료인력의 사직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개별 병원에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내린 다음, 업무개시 명령과 진료유지 명령 등을 연이어 내리며 의료진들의 법적 지위를 고정해 두었고, 뒤이어 전공의들에 대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기 시작하며 압박을 본격화하였다. 핵심은 정부가 내리는 각종 명령이 사직서의 효력 발생을 막을 수 있느냐에 있다고 보여진다. 사실 근로계약이야 사인간의 계약이므로 계약을 종료하는 데에도 당사자들의 의사가 중요하다. 계약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만, 그만두겠다고 마음이 떠난 근로자를 잡아봐야 근로계약이 제대로 유지될 리 없다. 따라서 보통은 근로자가 사직서를 던져서 근로계약의 해지를 통보하면, 사용자도 사직서를 수리하여 합의하에 근로계약을 해지, 즉 종결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내려진 업무개시명령과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진료 유지 명령으로 인해 병원의 사직서 수리가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근로계약의 해지 통보는 있지만 수리가 불가능하니, 결국 여전히 근로계약은 해지되지 않았으며 근로계약에 의해 여전히 병원의 의료인력으로 남아 있는 이상 업무개시 명령에 응할 의무도 있다고 보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사직서를 던진 전공의들은 사직서 제출의 효력 발생시점을 주장한다. 민법 제660조 제2항은 근로계약 해지의 통고(=사직서 제출)을 한 날로부터 1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사직서 제출 후 1개월 이후에는 업무개시 명령의 효력이 없어진다는 취지이다. 다만 이 주장에는 '민법 제660조 제2항은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근로계약에 적용되는 것'이므로 통상 1,2년이나 4년 정도로 고용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을 체결한 전공의들은 해당사항이 없다는 약점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오히려 고용기간을 정해놓은 근로계약은 사용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근로계약을 종결시킬 수 없는 것일까? 민법은 이 문제를 제661조에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각 당사자가 고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정해두어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대법원은, '민법 제661조 소정의 '부득이한 사유'라 함은 고용계약을 계속하여 존속시켜 그 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불가능한 경우를 말하고, 고용은 계속적 계약으로 당사자 사이의 특별한 신뢰관계를 전제로 하므로 고용관계를 계속하여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신뢰관계를 파괴하거나 해치는 사실도 부득이한 사유에 포함되며, 따라서 고용계약상 의무의 중대한 위반이 있는 경우에도 부득이한 사유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즉, 신뢰관계 파탄, 주요한 고용계약상 의무 위반 등이 있으면 그 상대방은 고용계약의 해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본 건에서는 추후 '정부의 명령으로 인한 근로계약의 강제'가 신뢰관계 파탄이나 주요한 고용계약상의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러한 내용은 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을 체결한 전공의들에 해당할뿐, 통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전임의 이상 교수님들의 경우에는 또 다른 국면이 전개될 수 있어 보인다. 이들은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고 그로부터 1월이 지나면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므로 업무개시 명령의 효력이 유지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사족을 한번 더 붙이자면, 물론 앞서의 설명은 모두 근로계약에 사직서 제출의 효력발생 시기에 관한 별도의 약정을 하지 않은 경우에 유효하다. 별도로 근로계약 기간 중에라도 사직서 제출시 수리와 무관하게 일정 시점에 계약이 종료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기재해둘 경우, 당사자의 의사가 우선하므로 민법 조항과 무관하게 그 시점에 근로계약의 효력은 종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전히 전공의들의 고용계약이 지속되고 있다면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 및 진료유지 명령은 의료법 조항에 기한 것으로서 일응 유효할 것이다. 따라서 업무개시 명령 및 진료유지 명령에 응하지 않는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주지해야 할 부분은 작년의 의료법 개정이다. 의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의료나 마약 관련 법률 위반, 혹은 진료비의 거짓 청구 등이 아니라면 반드시 면허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개정된 의료법은 어떠한 종류의 범죄던 간에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다면 선고유예를 받았든 집행유예를 받았든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개정으로 인해 많은 수의 전공의들이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에 몰린 의료인이라면, 일응 금고 이상의 형을 피할 수 있도록 변론 방향을 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 및 진료유지 명령의 효력이 어디까지 인정될지에 따라 무죄의 변론을 할 수 있을지, 혹은 선처를 구하는 변론을 해야할지가 달라질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한 경우라도 면허가 취소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여 적극적으로 선처를 구하는 방안을 강구해 둘 필요는 있어 보인다. 수사단계에서라면 환경,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 기소유예를 구할 수 있고, 재판단계라면 마찬가지의 사정을 참작하여 벌금형에서 그치도록 할 여지가 있다.

면허 취소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현행 의료법은 자격정지 처분 기간 동안 의료행위를 하거나, 면허를 재교부받은 사람이 자격정지를 시킬 수 있는 행위를 한 경우, 또 면허를 대여하거나 일회용 의료기기를 재사용하여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무면허 의료행위를 교사한 경우, 허위로 진료비용을 청구한 경우 등은 면허취소 사유가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이 면허가 취소된 경우, 그 면허의 취소 사유가 없어진 후 개전의 정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에 한하여 재교부가 가능하다. 다만 최근 재교부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재교부까지 걸리는 시간도 예전보다 더 길어지고 있다. 재교부가 거부되는 경우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걸 수 있지만 거부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등 절차 관련 위법성이 현저하지 않는 한 재교부 결정 여부는 복지부장관의 재량으로서 그 재량권 행사가 인정되는 사례가 더 많으니, 애당초 면허 취소처분까지 가지 않도록 사전적인 리스크 관리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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