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이제 디지털 전환을 준비해야 할 때(3) 우버(Uber)와 블랙캡(Black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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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이제 디지털 전환을 준비해야 할 때(3) 우버(Uber)와 블랙캡(Blackcap)
  • 승인 2024.03.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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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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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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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

런던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마차를 연상케 하는 키가 껑충하게 큰 검정색 왜건형 택시를 종종 보게 된다. 런던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블랙캡이라는 택시인데 블랙캡 택시기사는 높은 연봉을 보장받는 인기 직업으로 평균 2~4년정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서 25,000여개의 거리와 20,000여개의 랜드마크를 외우는 약 12번 정도의 시험을 거쳐야 하는 극악의 취업난이도를 통과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더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복잡한 공간훈련 덕에 블랙캡 운전기사들은 일반적인 버스기사들에 비해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크게 발달하는 것으로 연구되었으며 이러한 뛰어난 길찾기 능력과 공간인지 능력은 블랙캡 기사들에게 일종의 자부심으로 통한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자부심은 2012년 우버(Uber)가 처음 런던에 상륙했을 때 당시 ‘우버의 단순 GPS로는 블랙캡 기사들의 복합적인 인지능력을 따라올 수 없다’라며 우버를 평가절하 하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블랙캡 기사들의 이러한 자부심은 얼마 가지 못했다. 5년도 채 되기 전에 그들의 연간 수입이 매년 1500만원씩 감소해서 절반 가까운 수입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2015년 런던에서 가장 큰 블랙캡 기사 교습소인 ‘날리지포인트’(Knowledge Point)의 폐업으로 이어졌다.

이에 견디다 못한 런던 택시조합은 우버와 법정 소송을 진행하였으며 여러 방향에서 복합적인 소송전을 벌인 끝에 우버 운전기사들을 혹사한다는 명목으로 우버의 영업 금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재판에서의 승리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2023년 결국 블랙캡은 다시 우버와 협력하기로 하였으며 런던 시내의 모든 블랙캡은 2024년부터 우버서비스에 등록되게 되었다. 기나긴 싸움의 종지부가 결국 “블랙캡의 우버 종속”으로 우버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었을 정도로 뛰어났던 블랙캡 기사들의 공간인지 능력과 그들의 운전 실력이 결국 그들의 직장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블랙캡 기사들은 우버의 GPS를 단순한 길찾기로 무시하고 자신들의 ‘런던 전체를 조망할수 있는 공간 지각능력’의 탁월함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쌓이는 Uber의 데이터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도로 사정에 대한 빅데이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의 힘은 결국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 VS ‘단순 노동자 + 빅데이터의 서포트’ 전쟁에서 후자가 더 우위에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의사들이 단순히 질환 부위만을 바라볼 때 한의사들은 몸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바라본다고들 이야기 한다. 실제로 한의학은 이러한 종합적인 인식 능력으로 인해 환자의 건강상태를 훨씬 큰 시각에서 조망하고 다뤄줄 수 있는 사고력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장점들이 열악한 여건속에서도 한의사와 한의학만의 독자적인 입지를 꾸준히 보존해준 경쟁력이 되어 왔다.

그러나 한의학의 이러한 장점은 이제 블랙캡 기사들이 빠졌던 동일한 함정에 빠지게 만드는 덪이 되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복합적인 인지능력의 특성으로 인해 단순화 시키기가 어렵고 구체화 시키기가 어려워서 디지털 시대에 맞도록 변화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결국 단순하고 수준 낮아보이던 디지털화된 데이터들이 꾸준히 축적 되었을 때의 집단 지성의 경쟁력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의학은 데이터화 하기 어렵다’라는 말은 ‘우리는 빅데이터 시대에는 경쟁력이 없다’ 라는 말과 같다. 어려우니까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 개개별 택시 기사들의 운전 실력은 때때로 우버와 빅데이터가 예상하지 못하는 지름길로 손님을 빠르게 안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개인 한명의 존재만으로는 거대하게 밀려오는 해일을 막아낼 수 없다. 이제는 한의학 또한 그 장점을 최대한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호한 한의학의 개념들을 하나씩 하나씩 측정 가능한 실질적인 물리량과 생체지표로 변환해 나가야 하며, 우리의 진료도 과거의 관습적인 진료행위에서 벗어나서 진찰 항목마다 객관적인 수치를 기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야 한다.

2019년에 시작해 햇수로 6년차에 접어드는 ‘인공지능 한의사’과제에서는 12개 임상분과학회와 진단학회 전문가들과 함께 한의 핵심 생체지표를 정의하고 이를 측정하기 위한 표준 프로토콜을 만들어서 책자로 발간한 바 있다. 그러나 한의 임상 현장의 특성상 단순히 책자가 발간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임상에 적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 것이다. 다행히도 이제 2024년 하반기에는 이렇게 개발된 표준 프로토콜로 구축된 ‘건강인 참조데이터’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제 한의 임상에서도 ‘맥이 약합니다’, ‘할머니 맥 같네요’와 같은 주관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아닌 ‘맥의 최대 압력이 40대 여성 평균값 대비 하위 20%밖에 되지 않습니다’ 와 같은 객관적인 답변을 해 줄 수 있는 건강인 참조값이 최초로 구축된 것이다.

다만 이러한 참조값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프로토콜을 따라 진단을 해야 한다. 아쉽게도 개별 한의사의 모든 장점을 전부 반영할 수는 없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부득이하게 잃어야 하는 한의학의 장점들이 아쉽겠지만 이제는 변해야 한다. 한의학 연구원의 ‘한의 핵심 생체지표에 대한 참조데이터 공개’가 2024년이 한의학 디지털 전환 원년의 해가 되는데 기여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상훈 / 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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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4-04-20 18:21:41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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