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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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9.0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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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를 공포영화와 함께

언제나 여름이 끝날 즈음에 ‘올 여름은 너무 더웠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정말로 올해 여름은 너무나 지난한 무더위였던 것 같다. 특히 계속되는 열대야와 많은 습도로 인해 짜증내는 일도 많아지면서 내심 빨리 9월이 오라고 기다렸다. 하지만 이 무더위가 9월 하순까지 간다는 뉴스에 또 한 번 놀라면서 그나마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극장가가 성황을 이룬다. 엄청난 세기를 자랑하는 에어컨의 위력 속에 스릴과 오싹한 분위기를 몸소 느끼면서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나오면 한순간이나마 무더위로 지친 육체를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올 여름 극장가는 <괴물>의 대단한 흥행으로 인해 여름 극장가의 단골손님인 공포영화가 힘 한 번 크게 써보지도 못하고 막을 내리고 말아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무더위가 계속 될 것이라고 하니 지금이라도 늦더위를 떨쳐내기 위해 공포 영화를 보는 것도 크게 늦은 일은 아닐 듯싶다.

매일 밤 9시 56분, 아파트의 불이 꺼지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우연히 건너편 아파트의 불이 꺼지는 것을 목격한 세진(고소영)은 주민들에게 불을 끄지 말라고 알리지만 오히려 범인으로 의심을 받으며 궁지에 몰린다. 그러다가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유연(장희진)을 만나 서로 친한 말벗이 되지만 그녀 역시 세진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급기야 형사(강성진)가 투입되고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다.

<가위>, <폰> 등을 연출하며 한국 공포 영화계에 한 획은 긋고 있는 안병기 감독의 <아파트>는 강풀의 원작 만화를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다. 기존의 재물로서의 아파트가 아닌 공포의 대상으로 아파트를 바라봤다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며, 아파트라는 공간을 통해 현대인들의 비뚤어진 욕구들을 표현하고 있다. 마치 상자 곽같이 꽉 막힌 틀 안에서 살아가며 심적인 여유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소외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서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고독한 시멘트 섬이 되는 아파트는 새로운 공포 영화의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집단 이기주의의 공동체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아파트>가 흥행을 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이 영화가 흥행이 됐다면? 아마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의 가격이 폭락했을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이 영화가 촬영된 아파트에서 나중에 영화의 내용을 알고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여하튼 올 여름 한국형 공포 영화로써 제 몫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 <아파트>는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할 부분으로 남기고 있지만 중간중간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부분들이 많으니 준비된 자세로 보시길 바란다.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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