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 타락천사
상태바
중경삼림 & 타락천사
  • 승인 2006.09.29 1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외로운 사랑을 음악으로 달래주는 왕가위표 영화

이번 추석 연휴는 누구에게는 가을 휴가가 되어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고, 누군가에게는 여러 식구들을 챙기느라 많은 고생을 시키기도 했다. 또한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이들에게는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제공해 주었지만 연휴 끝에 찾아오는 나른함과 무기력함이 온 몸을 감싸는 후유증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럴 때 일수록 맑은 하늘과 서서히 물들어 가는 자연들을 보면서 생기 에너지를 충전시키거나 아련한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은 어떨까?

10여 년 전, <영웅본색> 같은 홍콩 느와르 영화가 서서히 한국에서 사라지고 있을 때 아주 독특한 홍콩 영화들이 소개되었고, 그 여파는 영화·음악·광고계를 뒤흔들어 버릴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심지어 영화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시나리오를 써오라고 하면 대다수가 바로 <중경삼림> 같은 내용으로 쓸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번에 합본 DVD로 출시 된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는 왕가위 감독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작품으로 원래 한 작품으로 기획이 되었던 영화였지만 시나리오, 콘티 없이 촬영하는 감독의 습성 덕에 이야기가 길어지게 되면서 2편으로 나뉘어서 제작됐다. 그렇다고 해서 뒤에 나온 <타락천사>가 <중경삼림>의 속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갖고 있기에 <중경삼림>을 보고 난 후 <타락천사>를 보면 영화 보는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사랑’이다. 하지만 서양 영화들처럼 격정적이거나 우리 영화처럼 눈물을 쏟게 하는 최루성 사랑 이야기와는 달리 헤어질 것이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실연의 아픔이나 짝사랑의 흔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다가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밋밋하고 지루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하고자하는 이야기와는 상반되게 배우들의 감정을 클로즈업과 현란한 카메라 워킹, 빠른 편집, 다양한 음악 등으로 표현하면서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또한 서로에게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혼자 읊조리는 독백 나레이션은 이 영화의 백미로, 4~5명의 주인공들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과 등려군의 <망기타>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행복한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의 DVD는 HD 화질로 변환 되어서 재출시 되었기 때문에 매우 선명한 화면을 제공하고 있으며, 왕가위 감독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정성일 씨의 코멘트가 함께 수록 되어 있다. 너무나 눈부신 가을 햇살 아래, 기나긴 연휴 후유증과 더불어 왠지 옆자리가 허전하다면 10여 년 전을 떠올리며 흘러간 팝송과 어우러진 감각적인 사랑 이야기에 한 번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