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12] 洪在호(1872~?)
상태바
[近現代 韓醫學 人物史12] 洪在호(1872~?)
  • 승인 2007.02.02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남일

김남일

webmaster@http://


韓醫學으로 民族意識 일깨워 日帝에 저항한 典醫出身 韓醫師

1945년 10월 18일자 每日新報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사계의 권위자들이 힘을 모두어 朝鮮獨立運動史를 편찬하고자 18일 조선독립운동사 편찬발기인회를 개최하여 李鍾麟을 발기인회장에 추대한 후 다음과 같은 위원을 선임하고 이 사업을 하루 바삐 성취할 것을 기약하면서 동 발기위원회에서는 이 사업을 주관하는 朝鮮忠義社를 설치하여 순국열사들의 충혼을 위로하는 위령제, 해방기념탑의 건설 등도 행할텐데 임시사무소는 종로2정목 永保빌딩에 두기로 되었다.”
이 기사의 뒷 부분에는 44인의 편찬발기인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한명의 한의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가 바로 洪在호이다.

洪在호에 대한 기록은 1914년에 나온 한국 최초의 한의학학술잡지인 『漢方醫學界』2호에 나온다. 그 기록에 따르면 그는 영남출신으로 뛰어난 학술적 능력으로 사립의학강습소의 학감을 하였는데, 비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천리를 멀다 않고 가서 치료해주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사진에서 풍기는 인상은 학자적 기품과 온화함 그 자체이다.
일제가 조선을 점령하면서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인생의 많은 풍파를 겪게 되니, 한의사로서의 洪在호의 삶도 많은 질곡에서 헤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일제시대에 겪은 고초는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해방후에 朝鮮獨立運動史 편찬발기인회에 추대되어 활동하게 된 것이다.

1935년에 나온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07년 무렵까지 侍從院 典醫를 역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0년 일제가 조선을 침범하게 되어 다음해인 1911년에 先皇의 건강을 염려하여 李王職 典醫에 임명된 것을 거절하지 않고 수락하여 근무하다가 1913년 3월에는 “본인이 원해서 관직을 떠남(依願免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아일보의 기록에는 洪在호가 1920년에 종로구 수은동에 贊和醫院이라는 한의원을 개원하였다고 쓰여 있다. 그는 이곳에서 열심히 환자를 진료하면서 구한말부터 근무하였던 舊皇室의 典醫로 계속활동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워나갔다.

1939년 5월 4일자 동아일보에는 『醫方類聚』를 주제로 한 대담이 나온다. 본 대담에는 洪在호가 조선의학계의 대부로서 초빙되어 『醫方類聚』의 우수성을 논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의서로 동의보감, 의학입문 등 좋은 것이 많지만 의방유취의 특색은 경험방이 많아서 중국에서나 혹은 기타 어디고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한 것이 많은 것이 올시다. 그 같은 것을 몇 백년 전에 발간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앞으로 이것이라도 다시 발간하여 세상에 널리 분포한다면 그것 역시 위대한 사업이 아니겠습니까.”
매우 민족의식에 가득찬 발언을 하고 있다. 한의학의 부흥을 위해 설립된 東西醫學硏究會에서 활동을 한 1928년에도 그는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종로경찰서의 감시를 받기도 하였다. 이것은 1928년 10월 23일자 종로경찰서 비밀서류에 나오는 그에 대한 조사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일제의 감시와 견제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의학 부흥을 위한 노력은 끝이 없었다. 당시 민족계열 제약회사로 활동한 太平製藥所에서 간행한 “太平醫藥時報”라는 정기 간행물 20호(1941년 2월호)에는 洪在호가 발명한 百草精이라는 약물에 대한 소개가 기록되어 있다.
『通俗漢醫學原論』의 저자로 유명한 趙憲泳이 고문으로 활동한 同報에는 京城醫專 출신으로 조선의 두 번째 의학박사인 吳一承이 百草精을 의학적으로 증명하였다는 기사도 수록되어 있다. 洪在호는 同報에서 趙憲泳과 더불어 3大名醫로 꼽히고 있으며, 이들은 태평양전쟁으로 피폐된 조선인들의 민심을 건강상담을 통해 수습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한의학의 부흥에 대해 부심하면서 1947년에 東洋醫學會라는 학술단체가 결성되어 오랜 기간 동안의 어둠은 걷히게 된다. 同學會는 1947년 『東洋醫學』이라는 학술잡지를 간행한다. 창간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모든 反民族的、謀利的 惡質要素를 肅淸하고民衆의 福利와保健을爲하야 東洋醫學의萬年大計를 爲하야 迷論과謀略을 排擊하고 正當한路線을 明確하게 그의 方向을 現實的으로提示하며 四十年間 日政下에서 거의 泯滅되얏든 東洋醫藥에對한 一般의常識을 啓發함이重大使命이다.”
洪在호는 金永勳, 趙炳瑾, 愼彩晟과 함께 東洋醫學會의 名譽會長에 추대되어 원로로서 후배 한의사들의 노력에 힘을 보태주었다.

우리는 지금 한의학을 살려 민족정신을 되살리고자 노력해온 과거 선배들의 노력을 잊고 있다. 아니 잊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노력을 폄하하기까지 하고 있다. 한의사제도가 없었던 시절 제도화를 위해 노력했던 과거의 기억은 우리의 힘이 될 수 있는 영광된 무형의 재산이기에 어떠한 논리로도 폄하될 수 없다.
한의사제도가 이 땅에 뿌리내린 것은 한민족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내린 우리민족에의 기회이다. 과학화니 세계화니 표준화니 하는 논리로 한의사제도를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것은 한의학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洪在호와 같은 선현들을 욕되게 하는 반민족적 행위를 자행하는 집단임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할 것으로 본다.

김남일(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