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칼럼] 우리가 넘어야할 벽① : 나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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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칼럼] 우리가 넘어야할 벽① : 나만 옳다
  • 승인 2007.11.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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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까지 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해 6회에 걸쳐 필자의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그러한 일을 해오면서 제가 느꼈던 벽,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는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꼭 넘어야 할 그 벽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필자 주>

한때 지역 한의사회에서 학술이사라는 직책을 맡아 매달 특정 주제에 대한 발표와 임상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다. 특별한 임상 경험을 가진 분들을 초빙하여 발표를 듣고 서로 치료 기법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자리였는데 그 때 필자는 한의사 사이의 토론이 얼마나 어렵고 허무한가를 절감했다.

A를 물으면 A를 답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대화 내용이 전달 과정에서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처럼 굴절되고 산란되는 것이다. 또 상대의 주장에 논리적 반박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자신만의 언어로 끝없는 자기 주장이 이어진다. 아마도 개념의 불명확함이 대학 교육에서부터 너무 오래 용인된 결과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착시가 심하다. 사상의학을 하는 분들을 예로 들면 체질진단의 초진 적중률을 물어볼 때 95~99%라 대답하는 분들이 많다. 그렇다면 체질진단 문제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 없는데 과연 우리가 그 수준에 이르렀을까? 질병 치료율이 거의 100%에 이른다고 장담하는 분들도 마찬가지다. 이는 모두 합리적 판단 능력이 결여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리라.

한의대에 재직 중인 한 교수가 학생들로 하여금 전국의 사상의학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체질진단을 받아오게 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의 일치율은 50% 미만이었다. 또 다른 교수는 혀 사진을 찍어놓고 설태 구분을 시킨 후 며칠 있다가 반복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 결과의 일치율 역시 50% 미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진단 정확률이 95%라고 생각한다면 연구 참여 한의사의 반 이상은 45% 이상의 오차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이다.

필자는 한의사의 진단 정확률이 너무 낮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주관적 감각에 의한 판단은 70% 이상이면 굉장한 경지가 아닐까? 설사 초진 적중률이 50~60%라 하더라도 며칠간 약을 써서 결과를 검토하고 바로잡을 균형감각이 살아있다면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검증할 판단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국에 역사가 오랜 한의원마다 소중한 임상기법과 우수한 치료성과가 보물처럼 간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한의학을 연구해야 할 당위성의 기반이다. 그래서 그러한 보물들을 정형화된 형태로 드러내고 효용성을 입증하며 객관화된 학문체계로 끌어올리고자 한다. 한방치료기법의 임상시험이 그것이다.

한국 침법 임상시험이나 사상체질 정보수집이나 모두 같은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한국 침법 임상시험은 효능의 객관적 입증자료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고 체질정보는 객관적으로 신뢰할만한 케이스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의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임상 효능이 매우 주관적으로 과대포장된 부분을 제거해야 신뢰할만한 임상자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부족해도 좋다. 자신에게 스스로 알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겸허함과 열린 마음만 있다면, 거기서 출발해서 우리 함께 진리를 찾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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