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칼럼] 우리가 넘어야할 벽② : 극좌파와 극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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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칼럼] 우리가 넘어야할 벽② : 극좌파와 극우파
  • 승인 2008.02.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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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의대에 다닐 때 학교에서는 공부 방법에 대한 토론이 뜨거웠다. “한의학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고 동창 모임에서나 동아리 모임에서나, 밥먹을 때나 술마실 때나 각인각색의 주장이 격렬하게 펼쳐졌다. 이렇게 자기 전공을 사랑하는 집단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것은 놀라운 열정이었다.

그 중에는 상당히 극단적인 주장들도 있었는데, 한의학 고전들을 존숭하는 나머지 글자 한자 고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이 그 한 예이다. 반대로 한의학을 과학화하면 기미론이나 장상론 같은 이론은 더 이상 필요없다고 보는 주장도 있었다. 전자를 극우파라 한다면 후자는 극좌파라 할 수 있을까?

필자는 한의대 입학을 전후해서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 하고 묻고 다녔다. 그 중에 “가장 먼저 한문을 공부해라, 그 다음엔 내경을 공부하고, 또 그 다음엔 상한론을 공부해라.”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옳다 여겨져 3년을 그 순서로 공부했다. 관련 과목들은 당연히 거의 모두 A+의 학점을 받았다. 사상의학을 공부하러 입학한 것이지만 기본기를 닦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과정은 참으로 소중했다. 세상을 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얻은 것이다. 봄에 잎이 돋고 꽃이 피며 여름에 무성해지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그 생명의 사이클을 동양에서는 어떤 개념으로 이해했는지, 어떤 언어로 표현했는지, 어떻게 관찰하고 공부해야 하는지, 그것이 인문 사회 자연에 걸쳐 얼마나 통일적인 체계를 갖고 있는지..... 그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전통학문을 할 기본기를 닦았다.

하지만 본과에 올라가 병리학과 본초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커다란 혼돈에 빠져 버렸다. 천인상응론과 음양오행론과 같은 훌륭한 기본이론에 비해 한의학의 구체적 기술들은 그 체계가 매우 서툴러 보였다. 생리학에서 기의 승강부침이 중심이론이면 그 논리가 병리학에서도, 본초학에서도 일관되게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본초에 이르면 승강부침은 몇 개 약재에서만 서술이 나타나는 보조적 개념이 되고 만다. 각론에서 적용하는 논리는 그때 그때 달랐고 그것이 전체적 이해를 어렵게 했다. 학교에서는 끝없이 무조건 암기를 강요했고 지루한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약성의 통일적 이해를 위해 커다란 모눈종이에 나만의 도표를 작성하고, 비교적 논리적인 본초서들을 독파하고, 식물분류학까지 공부해가며 분투하던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 많은 의서들은 선배의가들 자신이 관찰한 것을 자신들의 언어로 잘 기록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것은 극히 정교한 관찰력으로 섬세한 기록을 남긴 상한론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래서 그들의 관찰은 믿어도 좋으나 그들의 논리는 다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을. 그러므로 병리학과 본초학은 우리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본2 때 한약분쟁이 터졌다. 한바탕의 싸움이 끝나고 난 후 나는 사상의학으로 돌아와 스승을 만나고 공부에 정진했다. 사상의학은 바로 그러한 재구성과 체계화 노력의 산물이었다. 물론 사상의학이 최종의 정답은 아닐 수 있으나, 적어도 그러한 시대적 노력의 선상에 있다고 보여졌다.

고전은 소중하다. 거기에는 극히 정밀한 관찰력을 가진 선현들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적 표현에 관한한 고전은 전혀 표준화되지 않은 암호덩어리이다. 게다가 전승과정에서의 손상도 많고 후대에서의 오해도 많다. 합리적 이성을 가진 우리가 이를 명확한 언어로 재구성하고 과학화하는 것이 진정 선현들을 존숭하는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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