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바다에서 살아남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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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바다에서 살아남기(14)
  • 승인 2010.01.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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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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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其經脈 調其血氣가 시침 목적
通其經脈 調其血氣가 시침 목적
침으로 五臟六腑 皮筋肉骨 질환 모두 치료 

발목을 삔 환자에게 침을 놓자마자 통증이 없어져서 쩔뚝거리지 않고 걸어나가는 극적인 치료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신기할 정도로 효과를 본 환자는 비슷한 경우에 병원보다 한의원을 먼저 찾을 것이 당연하다.

침의 효과는 단지 근골격계 질환 뿐 아니라 내과의 여러 질환에도 두루 효과가 난다. 고혈압 환자가 침을 맞고 나서 즉시 정상혈압으로 변하기도 하며 오랜 설사가 침 한 번에 그치기도 한다. 소아의 언어 발달이 늦은 경우에도 침 치료를 통해 빠른 속도로 인지력과 언어 발달이 좋아진 경우도 있다.

침의 효과가 발현되는 속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타박상 환자가 침을 맞는 짧은 시간 중에 시퍼런 멍이 갈색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50대 후반의 여성이 얼굴과 무릎의 타박상으로 필자에게 온 적이 있다. 이틀 전에 물건을 들고 길을 가다가 넘어지면서 붓고 멍이 들었다고 한다. 살펴보니 오른쪽 눈 아래 광대뼈 외측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으며 무릎도 멍이 들고 부어있었다. 어혈(瘀血)을 푸는 약을 며칠 쓰자고 했지만 환자는 몇년 전부터 신부전으로 혈액 투석을 하는 중이라고 하면서 약 먹기를 꺼렸다.

할 수 없이 침으로만 치료하기로 하고 환자의 목 뒤를 여기저기 만져보니 왼쪽 대저(大杼)혈 주위에 콩알 같은 경결이 만져진다. 환자에게 침을 맞으면 많이 좋아질 거라고 말해주면서 왼쪽 대저혈의 경결을 한참 동안 꼭 누르는 조법(抓法)을 쓴 다음에 침을 천천히 놓았다. 10분 정도 지나서 확인해 보니 눈 아래 시퍼런 멍의 색이 확실히 줄었다.

30분 넘게 유침(留針)하고 나서 침을 빼고 환자에게 물어보니 얼굴과 무릎이 많이 부드러워 졌다고 한다. 무릎의 붓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거울을 보고 피부색이 달라진 것을 직접 확인하고는 침이 이런 효과도 있느냐며 깜짝 놀란다. 그 후 3일 동안 대저 혈에 침을 맞고 멍이 들어서 시퍼렇던 피부색은 거의 정상이 되었다.
혈압이 정상이 되고 멍이 삭으며 발달장애가 호전되는 등의 임상례는 침의 효과가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근육이나 혈관, 림프관, 신경을 통해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황제내경>은 ‘구침십이원’에서 영기와 위기가 운행하는 경맥(經脈)은 육안으로 볼 수 없으며 신기(神氣)가 유행출입(遊行出入)하는 혈(穴)도 가시적인 피육근골(皮肉筋骨)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있다.

“經氣를 모아 좌우상하로 치우친 營衛之氣 균형을 맞추고 침에 邪氣를 달라붙게 해서 몸 밖으로 빼낼 수도 있다”

침을 놓는 목적은 통기경맥 조기혈기(通其經脈 調其血氣) 하는데 있다. 경맥(經脈)은 영기(營氣)와 위기(衛氣)가 흐르는 통로이다. 침을 놓으면 영기와 위기가 잘 흐르게 되며 침으로 경기(經氣)를 모아서 좌우상하로 치우친 영위지기(營衛之氣)의 균형을 맞출 수도 있고 침에 사기(邪氣)를 달라붙게 해서 몸 밖으로 빼낼 수도 있다. 영기와 위기는 인체의 내부와 외곽를 운행하며 내부의 장부(臟腑)와 외곽의 지절(支節)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침으로 내부의 오장육부(五臟六腑)와 외부의 피근육골(皮筋肉骨)에 생긴 병을 모두 치료할 수 있다.

<황제내경>에는 침의 진수(眞髓)가 치신(治神)에 있다고도 한다. 침으로 오장육부의 병 뿐만 아니라 생명의 주체인 신(神)까지도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다. 영기와 위기의 균형을 맞추고 기와 혈을 조절하며 신을 다스리는 침의 진정한 효과가 재현될 때 한의학의 본 모습이 드러날 것이며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치우친 1차원적인 서양의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 의학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똑같이 발목이 삐어서 온 환자에게 같은 혈자리에 침을 놓아도 효과가 나는 정도가 다르거나 같은 환자라도 날마다 똑같은 효과가 나지 않는 것을 임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다. 환자나 치료 혈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그 이유는 보사법(補瀉法) 또는 침을 놓은 시간(時間)에 있을 것이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기의 소재를 정확하게 알아내서 행침할 경맥을 선택했다면 다음 순서는 보사법을 선택하는 일만 남는다.

여러 곳의 혈에 침을 놓으면 효과가 나더라도 어느 혈의 효과 때문인지 알기 어렵거나 엉뚱한 혈의 효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침을 한 개씩 놓고 환자의 반응을 보면 그 혈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확연하게 드러날 것은 당연하다. A라는 혈에 침을 놓을 때의 치료효과가 갑에게는 나타나는데 을에게는 나타나지 않으며, B라는 혈에 침을 놓은 효과가 을에게는 나타나는데 갑에게는 나타나지 않고 A와 B의 혈이 서로 연관이 있다면 체질이 침의 효과를 좌우하는 요소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연재하면서 소개한 임상례의 치료혈들은 모두 한 개의 혈만 취혈해서 행침한 경우다. 어쩔 수 없이 양명경(陽明經)에 위기가 소재한 시간에 태양경(太陽經)에 속하는 혈에 침을 놓게 됐을 때는 효과가 미미하거나 잠시 좋아졌더라도 다음날 다시 내원했을 때 증상이 재발돼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경우는 정확한 시간에 행침하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왼쪽에 침을 놓아야 하는 우형인 경우에 좌우 판단을 잘못해 우측의 같은 혈에 침을 놓았을 때는 더 악화돼 밤새 아팠다고 하는 식으로 부작용이 난다.

대표집필= 이정우 동의형상의학회 반룡수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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