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시술, 단순 자극요법 아니다
상태바
침 시술, 단순 자극요법 아니다
  • 승인 2010.04.22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우

이정우

contributor@http://


한의학 바다에서 살아남기(22)
침 시술, 단순 자극요법 아니다
바늘 굵기와 안전 유무는 별개

한의학 바다에서 살아남기(22)- 발침에도 시간이 있다 

최근 법원에서 안마사는 침의 종류를 불문하고 침술을 할 수 없다는 판결이 있었다. 대구지방법원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침을 놓는 영업을 한 시각장애인 모씨에 대해 징역과 벌금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되었다는 내용이다. 침의 시술은 침의 종류를 불문하고 면허가 있는 의료인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더불어 1988년 시각장애인이 안마의 보조요법으로 약 0.2mm 굵기의 3호침 이하는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는 당시 보건사회부의 유권해석이 부당하다고 명시하기도 했다는 내용도 함께 보도되었다.

행침을 의료인인 한의사만이 할 수 있다는 제도적인 확인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생계 방편으로 침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부당한 점이 있다. 장애인의 생계를 빌미로 불특정 다수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행정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법이 규정한 자격을 떠나서 시각장애인이 침을 놓아서는 안되는 근거가 있을까. 진단은 배제한다고 가정하고, 보상적으로 발달한 탁월한 촉감으로 혈을 찾고 침을 놓을 수는 없을까? 답은 ‘그래도 침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유침해서 진기가 경혈에 가득 차면 경혈 주위의 피부가 절로 오그라든다. 그 변화는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침 시술의 순서는 진단과 선혈이라는 과정을 제외하고 본다면 일반적으로 ①침을 놓을 자리를 찾아서 ②침을 놓을 준비를 하고 ③침을 놓은 다음 ④유침하고 ⑤침을 빼는 일련의 상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보사법의 조작이 행해지게 되며 침을 놓기 전에 혈자리를 쓸고 누르고 튕기는 등 준비동작도 있다.

이런 행침의 과정을 정량적으로 표현하고 기준을 세우기는 어렵다. 실처럼 가는 굵기의 침을 놓는 혈을 어떻게 찾는지, 침을 놓을 때 진침(進針)하는 속도는 초속 몇 밀리여야 하는지, 얼마나 들어가야 하는지, 빼는 속도는 얼마로 해야 하는지 언뜻 봐도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얼마나 오래 유침(留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5분 동안 유침하는 것보다 10분 유침하면 더 효과적인가? 그럼 30분이나 1시간을 유침하면 더 효과가 좋은가? 침의 효과와 유침시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을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밝히기는 어렵지만 유침시간에 대한 경전(經典)의 지침은 있다.

<황제내경>에서는 보법(補法)의 경우에 침을 놓은 다음 유침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되어있다. 이렇게 침을 가만히 두는 이유는 침 주위로 기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다. 진기(眞氣)를 모으는 보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경혈에 기가 모이는 시간이 필요하고, 기가 가득 찼을 때 침을 빼라는 말이다.

그러면 기가 가득 찬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참 동안 유침해서 진기가 경혈에 가득 차면 경혈 주위의 피부에 갑자기 변화가 생긴다. 느슨했던 경혈 주위의 피부가 저절로 오그라드는 자연스런 변화가 생기게 되며, 그 변화는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런 변화를 경전에서는 “기기이지, 적이자호(其氣以至, 適而自護- 이합진사론)”라고 한다.

여기서 ‘지(至)’란 말은 더 이상 채울 수 없이 100% 가득 찼다는 뜻이며 ‘적(適)’은 바로 그 순간이란 의미다. 기가 가득 차게 되는 그 순간이 되면 저절로 주위의 피부가 긴장하여 오그라드는 변화가 생긴다는 말이다. 이런 변화가 언제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침을 놓은 의사는 두 눈을 침에서 떼지 말고 계속 관찰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보건복지부의 과거 유권해석은 이해 부족에 따른 단견에 불과하다. 바늘이 굵으면 위험하고 가늘면 안전하다는 식이다


그런데 앞을 볼 수 없다면 피부에 변화가 생기는 순간을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 “적이자호(適而自護)”한 순간을 놓치게 되며 유침을 그만두고 침을 빼야 하는 타이밍도 놓칠 수밖에 없다.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행침에 있어 큰 결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이런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겠지만 모르고 넘어가는 것과 원칙을 지킬 수 없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과거 유권해석은 침을 단지 피부 속에 찔러 넣는 바늘 정도로 보고 침술을 단순한 자극요법의 하나로 간주하는 단견에서 나온 것이다. 바늘이 굵으면 위험하고 가늘면 안전하다는 식이다. 그러나 한의사라면 누구나 침술이 전적으로 동양의학에 바탕을 두고 완성된 학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침의 굵기와 위험은 별개 문제다.

마침 낮에 환자가 뜸한 틈에 발등이 아파서 온 여자환자가 있었다. 스포츠댄스 선수로 시합이 열흘 남았는데 2개월 전부터 오른쪽 발의 태충 부위에 강한 통증이 계속 있었는데 며칠 전에는 발등의 임읍혈 부근이 아프고 퉁퉁 붓기까지 했다고 한다. 내원하기 전날은 발을 아래쪽으로 내려놓기만 해도 통증이 심해서 서울 반대쪽에서 찾아왔다고 하는 환자였다.

발등 아픈 부위에는 동선을 테이프로 붙여 놓았고 약국에서 받았다는 테이핑이 여기저기 붙여져 있었다. 또한 규음혈에는 팥알만한 검은색 스티커도 붙어있기에 뭔가 하고 물어보니 색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책의 부록에 있는 스티커라고 한다. 두 달 동안 바르는 파스를 얼마나 발랐는지 피부는 우둘투둘해져 있었다.

환자에게 이런저런 동작을 시켜보고 목 뒤와 어깨를 눌러보면서 좌형(左形)으로 진단을 내리고 일어난 시간을 체크한 다음에 태양경(太陽經)이 개혈하는 시간에 맞춰서 오른쪽 천주혈에 침을 놓았다. 침을 놓고 나서 틈틈이 살펴보니 15분쯤 후에 침 놓은 자리가 확 긴장되는 현상이 생겨서 바로 발침하고 걸어보게 했다. 역시 올 때보다 훨씬 걷기가 편하다고 한다. 환자도 좋고 멀리서 오도록 소개해준 분께도 체면이 서게 되었다.

이정우/ 동의형상의학회 반룡수진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