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질환을 살리자(5) - 연구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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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질환을 살리자(5) - 연구부문
  • 승인 2004.03.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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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절실하면서도 진정한 가치 인식 안돼


어느 개원한의사의 고민

“요즘 한의원 경영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한의원은 우후죽순으로 생기지요, 환자는 갈수록 똑똑해져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지 않으면 눈빛부터 달라집니다. 그뿐입니까? 양의사들이 어떻게나 환자들을 겁주었는지 한의학 불신, 한의사 불신의 정도가 높아가고 있어요. 정말이지 힘듭니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있는 내가 이 정도인데 젊은 한의사들은 오죽하겠어요?”

서울에 개원하고 있는 모 원장의 하소연이다. 한의사들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의사의 평균진료수입이 형편없이 추락해 양방내과의사와 치과의사에 비해 현저하게 뒤쳐지고 있다. 더군다나 한의사의 수입은 편차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균이하의 수입을 가지는 한의사가 훨씬 많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의사는 겉으로 소문난 것보다 훨씬 가난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가 개개인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한의학시장에서 한의학수요와 한의사공급간 적정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진다. 일부의 전문의와 특화에 성공한 한의원 말고는 대부분 생존의 위기에 처할 날이 머지 않았다. 외국인에 한의학시장을 개방하게 되면 경쟁이 격화되어 그야말로 적자생존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기술을 보유한 한의사만 살고 나머지는 도태되거나 목숨만 부지하게 된다. 요즘 들어 위기를 느끼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것도 주위 상황의 변화를 체감하기 때문이다.


유일 대안인 ‘연구’ 외면

생존문제를 걱정하는 한의사 중에는 진단의 객관화와 치료의 효능효과가 관건이라고 보고 부지런히 이 강좌 저 강좌를 쫓아다닌다. 그러나 유명하다고 소문난 강의를 다 쫓아다녀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 갖게 된다. 그런 강의는 좀 과장되고 혹은 주관적인 주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진단·치료기술을 가졌다고 하는 한의사가 객관적인 근거를 공개하지 않고 뭔가 숨기거나 아니면 내용도 없이 현혹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이런 잘못된 현상을 타개하고자 개원가의 진단·치료를 객관화·제품화 하는 연구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도 치료기술을 실용화하는데 우선적으로 지원하므로 한의학연구원의 연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연구원에서 개발된 기술을 임상가에서 비싼 로열티를 주고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무엇보다 치료기술의 검증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한의학연구원의 고병섭 경영기획실장은 “연구원은 임상가의 경험을 필요로 하지만 처방의 효능검사를 의뢰해도 대부분 주관적이어서 유의성이 있는 정도에 불과할 뿐 효과가 있는 처방은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사상의학은 협조가 잘 되는데 비해 비만은 해당 한의원에 가서 물어보면 굉장히 꺼린다고 高 실장은 말한다. 반면 일선 한의사들은 한의학연구원의 인증을 얻었다는 사실만 부각시켜 한의사가 연구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지 의문이라고 씁쓰름한 표정을 짓는다.


임상가의 자발적 참여 요망

연구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이상 진단과 치료에서 특이한 반응이 나오면 문헌적 근거와 관찰, 실험을 사용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누가 보더라도 타당하다고 인정하면 그 진단과 치료법은 객관성을 갖는 것이고 그 결과는 일정한 조건 속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의계 연구소의 대부분이 임상연구센터가 없어 100%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제한적인 여건내에서나마 나름대로 최선의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연구자와 임상가 간의 유기적인 협조다. 자신의 치료결과가 일정한 효과를 보이면 학계에 발표해서 치료방법을 공유해야 한다. 설사 노하우는 공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치료기전 정도는 공개해야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을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邪術이라는 오해는 받지 않는다. 최근 K한의원의 암치료사건 파문도 치료효과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치료방법의 공개와 그를 통한 검증과정이 빠져 있다는 점에 있다.

양방은 미국의 어느 한 대학에서 진단·치료법이 연구되면 의학저널과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전세계 의료인에 전달되어 임상에 적용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양의사는 세미나 한번 참여해서 신의료기술을 익히고 임상에 적용하여 환자를 치료, 결과적으로 국민으로부터 고른 존경을 받는다. 그런 반면 한의사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틀 속에서만 연구가 이루어질 뿐이고 그나마 연구도 연구비의 부족, 임상센타의 부재, 한의사 개개인의 미온적인 협조로 실용화까진 거리가 멀다. 이런 현실은 결국 검증되지 않은 진단·치료를 하는 한의사, 자신감 없는 한의사, 의료의 질이 들쭉날쭉한 한의사, 환자에게 불신받는 한의사, 가난한 한의사라는 이미지를 고착화시킨다.


갈수록 커지는 한·양 기술격차

최근 과학기술부는 기초의과학연구센터 선정에서 양방의 11개 의대가 선정됐으나 한의대는 한 곳도 선정되지 못했다. 수월성을 이유로 모두 묶어서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센터당 매년 5∼10억원씩 9년간 60억원을 투입하는 이런 대형 사업에 한의계가 빠진다는 것은 한양방의 기초과학연구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양의사와 한의사 간의 소득격차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와중에서 요즘은 한의학에서도 근거중심의학(EBM)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한의학의 특성상 데이터에 입각한 객관화가 어렵지만 일본과 중국, 미국 등에서 연구되고 있는 방법이므로 무조건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들은 이 방법이 다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무차별 다수가 한약이나 침 처방을 할 때 치료효능과 부작용 등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점에서 적극 도입해야 할 연구방법으로 거론한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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