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 6년제 합의는 무효” 파문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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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 6년제 합의는 무효” 파문 확산
  • 승인 2004.06.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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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 “의료계 배제한 정치적 담합 인정 못해”
한의계, “보건복지부가 함정에 빠트렸다” 분노

지난 20일 타결된 약대 6년제 합의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보건의료계가 일제히 반발하는 등 최종 결정까지는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윤구 보건복지부 차관이 입회한 상태에서 대한한의사협회 안재규 회장과 대한약사회 원희목 회장 간에 체결된 합의안에 대해 양방의료계는 물론 합의에 참가한 한의계조차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여론은 갈수록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의대생들도 한-약-정 합의에 대해 ‘원칙없는 담합’이라고 비난했다. 전국한의과대학학생회 연합(약칭 전한련·의장 서정복)은 “한의학 영역에서 원칙 없는 의료행정이 되풀이 되어왔다”고 비난하는 한편 약대 6년제에 대해서도 “국민건강권과 공공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면서 합의문의 전면 폐기를 주장했다.

양방의대생들이 중심이 돼 움직이던 양의계도 이번 합의를 기점으로 의협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할 뜻을 표명함에 따라 약대 6년제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의과대학학생회연합(약칭 전의련·의장 차민수) “보건의료의 핵심인 의료계의 입장을 배제한 합의는 정치적 담합으로 인정 못한다”면서 “모든 공동체의 합의”를 주장하고, 학사 일정의 연기를 결의했다.

한의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합의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자 매우 격앙돼 있는 분위기다. 일선 한의사들은 합의문에 나와 있는 것과 달리 명확히 보장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분개하고 있다. 일부 회원들은 보건복지부가 약사법 개정과 이면 합의를 미끼로 한의계를 함정에 빠트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보였다.

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의 발언은 보건복지부의 의도가 그대로 묻어난다는 게 한의계의 정서다. 김 장관은 합의문이 발표되기 직전인 21일 오전 모 방송에 출연해 “한의사들이 저항하는 것은 한약과 양약이 명확히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 달라는 것”이라면서 “한약사는 한약학과를 졸업해야 한다는 것을 약사법 제3조2에 넣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김 장관은 이어 “약학대학에서 한약학과를 분리해 달라는 것은 합의된 게 아니며 이는 서양약과 한약을 합칠까봐 그러는데 약사회에선 한약과 서양약을 합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면 약사법 조항과 의료법 조항을 그 원칙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개정을 해 나갈 수 있겠다”고 말했다.

박병하 한방정책관은 “이는(한약학과 문제) 향후 협의기구에서 논의할 성격으로 안다”고 밝혀 장관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한 마디로 거창하고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해 한의계로 하여금 합의를 유도해놓고, 남는 의구심은 휴지조각에 불과한 이면합의라는 미끼를 던져주고 방송에서는 합의내용이 겨우 법조항 하나를 개정하는 것이라고 못박은 것은 고도의 술수 아니냐는 것이 일선한의사들의 판단이다.

한약학 발전의 핵심과제인 한약학과를 약대에서 분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약과 한약제제 등의 별도관리를 위한 제반 논의를 향후 구성될 합의기구로 떠넘긴 것 자체도 한의계를 우롱한 처사가 아니냐는 자각도 뒤늦게 싹트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과거에도 문제가 되면 각종 위원회를 구성하여 한의계를 어르고 달래면서 위기상황을 모면하고, 결국에는 단체간의 갈등을 부추겨 약사회와 의사회에 편향적인 결론만 도출하곤 했다.

93년 9월 경실련 중재아래 한의계와 양약계 간에 타결된 합의내용이 약사법개정추진위원회에서 거의 반영되지 않은 채 왜곡된 약사법개정으로 귀결된 바 있다.
그후에도 보건복지부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산하에 각종 위원회를 수없이 구성했지만 한의약관련 조항은 논의만 무성한 채 유야무야 끝낸 경우가 허다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장관이나 해당 국장이 바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발뺌한 것도 보건복지부의 통상적인 행태였다.
약사회가 한의계의 요구와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는 것도 향후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원희목 약사회회장이 합의문 발표시 기자 일문일답에서 ‘약사가 양약에만 전념하고, 한약은 한의약의 특성에 따라 발전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합의정신의 본질’이라고 말한 안재규 한의협 회장의 설명에 대하여 “그게 아니고 약사법시행령에 규정된 한약학과 조항을 약사법모법으로 옮기자는 것이 본질”이라고 정정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양 단체간 합의의 내용을 둘러싸고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 것도 향후 합의사항의 이행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의협은 오래 전부터 약대 6년제의 선결과제로 ▲한약사의 응시자격을 ‘한약을 전공하는 대학의 졸업자’로 명시하고 ▲한약 및 한약제제는 양약과 분리하여 별도로 관리되도록 하며 ▲한약·한약제제 취급은 한의약전문인에게 전담케 하고 ▲한약학과를 약대로부터 분리하여 대학 운영과 교육과정을 전문화해야 한다고 못박은 바 있다.

따라서 “앞으로 논의하기로 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다는 것이 일선 한의사들의 인식이다.
오히려 일선 한의사들은 합의가 “한약학과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기보다 한약학과를 죽이려는 합의”라고 맹비난하고 합의사항 무효와 향후 구성될 것으로 보이는 협의기구 구성 자체를 저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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