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흠뻑 내리고 나자 봄철의 불청객 황사와 미세먼지가 한결 가벼워졌다. 산색도 점차 푸르러지고 들판에는 온통 새싹이 돋아 싱그러운 봄내음이 가득하건만 회색빛으로 뿌옇게 뒤덮인 하늘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던 터였다. 풍사가 육음의 첫째인지라 늘 바람을 피해 다니는 입장이지만, 이런 날씨에는 별도리 없이 봄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어 쓸어 내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미공개 필사본 의서 내용 가운데 가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상암정오행이나 맥결, 혹은 새로운 방식의 명당도 뿐만 아니라 권미에 수록된 사암침법 경험방이 백미라 할 수 있다. 이 침구서에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침법과 진단맥법 등이 연계되어 독자적인 체계를 구성한 것도 참신하지만, 사암침법 연구에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실제 사암침을 사용하여 지득한 경험을 기술한 것이라 하겠다.
경험방은 권미 쪽에 두 군데로 나누어 기재하였는데, 앞쪽은 대개 사암침법을 응용한 유효방을 상하2단으로 간략하게 적어놓은 것이다. 예를 들면, 대변불통에 대장정격, 낙상에 어혈문을 사용하되 어눌하고 현기증이 있으면 심경정격을 함께 사용하라 등과 같은 것이다. 또 광증이나 화열로 인한 증상에 모두 폐경정격을 쓴다했고 복통에는 심경정격, 滯泄에는 내정을 사하며, 소변불통에 음곡을 보하라 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지불수, 태타기와에 비수, 삼음교, 장문, 조해, 중완, 해계를 쓰고 남녀 전신창만에 대돈과 소충을 보하고 음곡을 사한다. 또한 角弓에는 신맥을 보하거나 대장정격을 쓴다했고 疫疾에는 태충과 소충을 보해주면 수시로 잡증에 기막힌 효과가 있다 하였다.
본문이 알려진 것이 아니므로 연구자를 위해 몇 가지 더 소개하자면, 슬산통에 폐경정격을 쓰고 태동에는 삼음교과 소충을 보한다고 했다. 출산이 지연되는 경우에는 합곡을 보하고 삼음교를 사해 준다. 허양으로 몽설이 생긴 환자에게 연곡을 사하거나 심경정격을 놓는다.
한편 부인에게 잉태가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삼음교를 보해주고 또 합곡과 태충을 보해주면 회임이 가능해 진다. 만일 태가 나오지 않으면 삼음교를 사해준다고 적혀 있다. 산후복통에는 심경정격을 쓰며, 역산에는 삼음교를 사하고 합곡을 보해준다. 또 다산한 부인의 흉복통에는 사관과 삼음교를 함께 보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였다. 부인대하증에는 좌우 삼음교를 보해주고 또 합곡과 태충을 보해준다.
또한 특이한 내과 병증에도 이용했는데, 菜疸(채독으로 생긴 황달증)에 비경정격을 쓰고 식허증에도 역시 비경정격을 응용한다. 냉흉증에는 심경정격 또는 내관을 보해주라 했다. 주체에는 태백, 태연을 보하고 대돈, 은백을 사한다. 음냉수체에는 간경정격을 쓰는데, 이런 병증을 支飮이라고 부른다. 나아가 血糞에는 심경정격이나 혹은 간경정격, 肉疸에는 내정을 사해주거나 심경정격을 쓰도록 권장하였다.
외과질환에도 자주 사암침법을 응용하여 치료하였다. 골담에 대돈, 소충, 복류를 보한다 하였고 大瘇에는 심경정격, 유종에는 태연을 보하면 좋고 횡골 끝에 덩어리가 뭉친 경우에는 태충을 보하면 좋다. 은진에는 대장정격이나 심경정격을 활용하며, 발제에는 대장정격을 응용해 보는 것이 좋다. 또 개창이나 피풍증에는 모두 폐경정격을 쓰며, 風丹증에는 (족)삼리혈을 보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소아병증에 있어서도 蚓腹痛에 蚯蚓침을 주고 承山혈을 사해주면 효험이 있으며, 소아별복에 태충을 구하고 보해준다. 또 별복증으로 인한 경풍에는 태충을 보하고 합곡을 사해준다. 감창이나 태독에는 곡지와 소충을 보하고 양곡을 사해주면 좋다고 하였다. 안타깝게도 경험방 일부는 결실되어 남아있는 분량이 많지 않다. 뒤쪽 경험편에도 처방용약과 함께 침혈이 기재되어 있어 참고해 볼만하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