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기] 몽골 한방의료봉사와 전통의학학술세미나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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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기] 몽골 한방의료봉사와 전통의학학술세미나③
  • 승인 2005.09.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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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접한 몽골의 문화와 전통

몽골은 몽고반점이라는 몸의 흔적을 우리와 같이 가지고 있어서인지 심정적으로 늘 가까운 이웃나라로 생각되어져 왔었다. 몽골에 가기 전에 지인으로부터 “몽골인은 생긴 모습과 웃는 모습이 우리와 비슷해 잠시 시골에 다니러 간 기분이 들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한 후 그 말을 실감했다.
공항에서의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았고, 한국말을 제법 잘 하고 외모가 우리와 너무 닮은 몽골인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도 그랬다. 중국을 갔을 때와 판이하게 다른 이러한 문화적 동질감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몽골은 우리나라의 60년 정도의 경제수준으로, 거리엔 한글 광고를 쓴 버스 등 한국산 중고차가 즐비했다.

몽골은 러시아권인 시베리아와 중국 대륙 사이에 위치해 있는 중앙아시아의 심장으로 정식명칭은 몽골리아(Mongolia)이며, 흔히 ‘몽골’로 불린다.
면적은 남한의 17배(한반도의 7배) 정도로 세계에서 17번째로 큰 국가이며, 아시아에서는 6번째로 넓지만 인구는 가장 적은 편이다. 몽골은 국토의 약 4/5가 기복이 완만한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초지가 좋아 그 넓은 초원에 양 떼들이 무리지어 초원의 풀을 먹고산다. 양은 이 지역의 주요 식량원이 된다고 한다.

인구는 현재 240여만 명으로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1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 것은 기후적인 악조건과 과거 한때 남자의 40%가 독신 라마승일 정도로 라마교의 영향이 컸던 때문으로 보고 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크고 작은 대학이 많이 있다. 그 만큼 국민들의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더욱 교육 받기를 열망하고, 지식을 숭상한다. 몽골의 부모들도 아들보다 딸에게 더 관심을 쏟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현재 몽골의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들의 70% 정도가 여학생들이라는 것인데 그 여학생들의 대부분은 의사, 법조인, 교사, 교수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나 몽골에서의 의사와 교사 그리고 공무원 등의 임금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한·몽친선병원에 근무하는 전통의사가 한 달에 6만~8만원 정도 받는다고 하였다.
근래 한류의 바람이 몽골에까지 불어서인지 한국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고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국국제협력단에서는 매년 한국어 시험을 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는 한국에 와서 숙식 일체를 제공받고 일정기간 공부할 수 있는 장학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는데, 우리를 안내해준 학생 중 한사람은 금년에 한국에 가게 됐다고 자랑하였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재래시장이라는 곳이 있다. 재래시장이래야 몽골의 전통적인 물건보다는 중국에서 건너온 값싼 물건이 더 많다고 하였다. 시내관광의 주요코스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이 한 번씩 들리는 곳이다.
그런데 재래시장을 소개할 때면 꼭 당부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매치기가 많으니 미리 주의하라’는 말이었다. 우리 일행도 가이드의 안내를 듣고 개별행동을 피하기 위해 7~10명씩 조를 짜서 다녔었는데, 역시 대단한 곳이었다.

길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툭 치면서 살짝 밀치게 한 후 앞주머니에서 손이 빠지는 사이에 손을 넣어 물건을 빼가는 솜씨는 단단히 주의심을 가지고 다니던 우리들을 더욱 놀라게 하였다.
그날 총무를 맡았던 최윤영 원장이 물건을 사기위해 시장을 다녀보니 ‘현지인들이 자기를 몽골사람으로 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 하고 자만하고 다니다가 지갑을 땅에 떨어뜨려 소매치기당할 뻔한 사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몽골의 공용어는 ‘할하어’ 곧 할하몽골어이며, 제2외국어는 러시아어인데 지난 70여 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덕에 관료들이나 엘리트세력 및 어느 정도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 그리고 대개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서구 자본주의의 유입과 더불어 몽골에서도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에서 독일어도 종종 사용되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어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몽골에서 확인한 또 하나의 사실은 몽골인 들이 자기나라의 글을 사용하지 않고 러시아의 글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심 안타까움에 정부의 유력한 인사에게 그 연유를 물었더니 몽골 내에서도 근래 몽골 글 다시 쓰기 운동이 일어나서 사용하려고 시도는 해 보았으나 그것이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하였다. 1921년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70여년간 소련의 영향권 하에서 살아오면서 젖어버린 문화적인 종속관계인지도 모른다.
몽골인들은 중국을 경계하고 러시아를 더 가까이 생각하고 있었다. 흡사 우리가 일본과 미국을 대하는 다수 국민의 정서처럼. 과거 중국에 침략당한 후의 부정적인 감정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사계절이 뚜렷하지만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크며, 특히 7, 8월의 여름에는 햇볕이 따가 와서 밖에 나가면 더위가 심하나 그늘에만 들어오면 시원했다. 그래서인지 실내에 에어컨이 보이질 않았다. 일교차가 심하여 밤에는 10℃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진료를 마치고 30년전의 러시아차를 타고 우둘투둘한 길을 달려 찾아간 흡수굴호수의 맑고 깨끗한 정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국과는 1979년 이래 각종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90년 3월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된 이래 교류 협력이 활발하다고 한다.
한국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한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이번 의료봉사와 학술대회에 참여하여 땀 흘리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모든 단원들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끝>

손인철 (원광대 한의대 교수, 대한경락경혈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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